은행들 ‘가계대출 더 조이기’
당국 “모든 정책수단 활용”
농협은행 등 일부 대출 제한
한도↓ 대출금리↑ ‘옥죄기’
영끌·빚투 가계 더욱 이자부담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한국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점점 급증하자 가계대출 증가율을 엄격하게 관리하라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요구에 은행들이 잔뜩 몸을 숙이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대출상품 신규취급을 아예 중단에 나섰고, 풍선효과와 대출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언제든 금리인상 등의 조치 등의 방안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2019년 말만 해도 가계대출 잔액은 약 1600조원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한국은행이 작년 3월과 5월 잇따라 기준금리를 연1.20%에서 0.50%까지 낮췄다. 제로금리 수준의 초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유동성이 풀리면서 가계부채는 급격하게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초저금리시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 내서 투자)’ 열풍으로 이어지면서 가계부채를 끌어올린 것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7월 말 가계부채 잔액은 1710조 3천억원이다. 1년 만에 100조 이상이 불어난 것이다. 문제는 작년 말만 해도 1631조 5천억원이었으나 올해 들어 증가속도가 더 가파르다는 점이다. 올해 1∼7월 전체 금융권의 가계부채 증가액(잠정치)은 78조 8천억원이다.
금융당국이 작년 말 시중은행들에게 올해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이 5∼6%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주문했음에도 반년 만에 벌써 1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지난달 은행권에서만 가계대출 잔액이 9조 7천억원 급증했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잡히지 않자 당국은 더욱 강력한 규제로 잡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당국은 은행권에 강력한 ‘대출 총량 관리’ 방안을 지속 요구하고 있다. 특히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금융위 직원들과 회의에서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한다”는 이례적인 표현을 쓰며 가계부채 잡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이에 시중은행들이 고개를 숙이며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NH농협은행이 가계 담보대출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도 일부 가계 대출 상품의 취급을 제한하거나 중단하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오는 24일부터 11월 말까지 모든 가계 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전세대출, 비대면 담보대출, 단체승인 대출(아파트 집단대출)의 신규 신청을 받지 않고, 기존 대출의 증액, 재약정 또한 불가능하다. 신용대출은 신규취급 중단 대상에서는 제외됐지만, 최대한도가 기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낮아졌다. 또 대출자의 연봉 이내에서만 빌릴 수 있다.
농협은행에 이어 농협중앙회도 전국 농·축협에 신규 집단대출을 일시 중단하기로 하며 동참을 결정했다. 농협중앙회는 집단대출 관리 강화와 함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축소 계획을 금융위에 보고했다. 또 주거용 오피스텔에 대해 모집인 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전국 조합이 독립된 법인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은행은 지난 20일부터 전세자금대출 신규 취급을 대폭 제한했다. 이미 우리은행은 올해 들어 분기별로 신규 전세자금대출 취급 한도를 설정해 왔는데, 3분기 한도가 벌써 소진돼 9월말까지 제한적으로 취급하기로 한 것이다.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도 담보대출 중 하나인 ‘퍼스트홈론’ 중 신잔액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 연동 상품의 신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는 아니더라도 대출 금리를 인상하거나 한도를 줄이는 방법으로 ‘옥죄기’로 동참하고 있다.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올리고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법으로 대출 금리를 점점 올리고 있다.
주요은행의 대표 신용대출 상품 금리는 올해 1월 최저 연 2.19%, 최고 연 3.74%였지만 19일 기준 최저 금리는 연 2.28%, 최고 금리는 연 4.01%로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다면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은 언제든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영끌과 빚투로 인한 이자부담도 함께 늘어날 전망이다.
과연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이번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울러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경기악화가 계속되면서 실제 대출이 필요한 가계 입장에선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 더욱 힘들어져 엉뚱한 데로 불통이 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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