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중에서… )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을사년(乙巳年), 소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됐다. 일본제국의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대한제국과 강제로 조약을 맺었고, 그로부터 5년 뒤(1910년)인 경술년 경술국치(庚戌國恥) 곧 한일합방이란 치욕의 날을 맞아야만 했다.
당시 조정 대신들은 침략자 이방과 부화뇌동하며 자신들의 영달만을 생각했다. 그들의 무책임한 매국 행위는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렸고 민족혼마저 꺼져가는 위기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이때 분연히 일어선 것은 조정도 관원도 관군도 아닌 민초(民草)였다.
당시 미국 제2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토머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 침탈행위가 만연하자 소위 ‘민족자결주의(모든 민족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를 주창하고 나섰다.
이 같은 민족자결주의 운동이자 정신은 일본침략에 굴복당해 속절없이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결국 1919년 3월 1일부터 수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지역에서 시민 다수가 리더도 없이 자발적으로 봉기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일본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해 저항권을 행사했으니 곧 3.1운동이다.
당시 또 다른 방법으로 일제에 항거한 저항 시인들의 봇물 같이 쏟아지는 저항시 역시 민족의식 고양에 괄목할 만한 영향을 끼쳤다. 그 저항 시 중 오늘날까지 회자 되는 대표적 명시가 있었으니 바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다. 이 ‘별 헤는 밤’ 마지막 부분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가 기록돼 있다. 민족 저항은 관원도 관군도 아닌 백성 곧 민초였으며, 외세 침략 전 관원에 의해 짓밟히고 외세 침략 후엔 이방에 의해 짓밟히며 늘 잡초처럼 살아온 민초였고 그들에 의한 의병이었으니 역사가 증인이다.
풀, 나아가 잡초는 밟으면 밟을수록 더 자라고 무성해지는 끈질긴 근성을 가지고 있음을 만물에게 배울 수 있다. 리더도 논의도 필요 없이 전국이 동시에 자발적으로 일어나 불의와 패권에 맞서는 무서운 힘은 총칼보다 더 강한 자유 의지를 가진 순백의 민초에 있다는 진리를 역사는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의 육십갑자(120년)를 지나 오늘 또 다시 을사년을 맞이했고, 이 한반도는 그날의 운명이 재현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지난 1905년은 대륙침탈의 야욕에 물든 일본에 의한 외교 박탈이 있었지만, 120년이 지난 을사년 지금 이 순간은 중국의 초한전(超限戰, 하이브리드전)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해양침탈을 위한 한반도 내정간섭에 속수무책이 됐으니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날의 을사오적이 여기저기서 다시 출몰하고 있으며 불법이 성하고 의정활동은 민의와 민생과 국가는 실종된 채 오직 한 사람의 죄를 없애는 법 만들기에 혈안이 됐고 민초가 국정 전반의 이 기이한 일을 위해 세금을 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 불법과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이 나라는 120년 전 그날과 같이 해양침탈의 붉은 마수(魔手)와 손을 맞잡아야만 했으니 자신들의 뒷배며 나아가 유일한 살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천년 아니 수만년 간직해 온 우리 민족의 정신과 율례와 상식과 도덕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해방 후 아니 동족상잔의 잿더미 속에서 일궈낸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 나아가 자유는 불과 6개월 만에 무너져가고 있다. 대부분 국민이 “이래선 안 된다”고 하지만 우유부단한 모습뿐, 그 어떤 묘책도 없는 이때, 역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분연히 일어나고 있다.
100여년 전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을 휘감았듯이, 서울 젊은 학생들이 시작한 매국과 부정과 불법 척결을 위한 자유의 물결이 태극기와 함께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리더도 없고 논의도 없이 한마음 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 청년들의 애국충정은 어디서 기인 된 걸까.
이 한반도 대한민국은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터전이며 미래이기 때문일 것이며 선진들이 쌓아 올린 금자탑이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청년의 양심과 정의감에서 비롯됐음이 틀림없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민초가 들불같이 일어났으며 그들을 짓밟으면 짓밟을수록 더욱 거센 항전을 서슴지 않았으니 그들의 목적이 이뤄지는 그 순간까지였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마지막 소절에 나오는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라는 시인의 고백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사상이었으며 우리의 고백이 돼야 함직하다.
결국 봄은 누군가의 희생과 희생의 결과물이며, 그 희생의 무덤은 무성한 풀을 만들어내는 귀한 종자(種子)가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