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시행을 앞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령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동시 반발을 불러왔다. 노동계는 “법 취지를 훼손한 시행령”이라고 비판하고, 경영계는 “기업 활동을 사실상 마비시키는 제도”라며 우려를 제기한다.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례적 상황이다. 이는 법 자체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정치적으로 설계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하청 노동자의 원청 상대 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 초안은 교섭 과정에서 ‘창구 단일화’를 적용하는 방향을 포함했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원청의 책임 회피를 도울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노조가 교섭권을 행사하려 해도 원·하청이 뒤섞인 구조에서는 원청이 유리한 위치에서 시간을 끌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하청 노조의 실질적 권리는 축소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경영계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하청 노조가 원청을 직접 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 법은 대기업에 사실상 무한대의 교섭 의무를 부과한다. 현대차 협력사만 8천여곳, 조선 대기업들의 협력업체도 수천곳에 이른다.

이러한 하청 사업장들이 모두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면, 대기업은 연중 노사 협상에 매달려야 할 지경이다. 기업은 생산과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없고 산업 경쟁력 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노란봉투법은 이처럼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도입됐다. 사용자 측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교섭 단위 설정 기준 역시 불명확하다. 쟁의행위의 대상이 어디까지인지도 논란이다.

결국 현장의 노사 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분쟁을 양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노동위원회나 각종 위원회가 사용자 측 판단을 내리도록 한 규정도 노사관계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을 낳는다.

이 모든 혼란은 법 제정 당시의 정치적 동력이 지나치게 강조된 결과이기도 하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입법이 속전속결로 이뤄졌고, 시행령 단계에서 뒤늦게 문제점을 보완하려다 보니 양측 모두 불만을 표하는 모순적 상황에 빠진 것이다.

노동계는 재개정을 요구하고, 경영계는 시행령의 추가 완화를 요청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양쪽 모두가 등 돌린 법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사 모두가 불신하는 법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법의 취지를 살리되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용자 기준, 교섭 단위 설정, 쟁의 대상 범위 등을 다시 정교하게 손질해야 한다.

노사관계는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의 결과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민감한 제도를 졸속 처리한다면 그 부작용의 대가는 결국 노동자·기업·국가경제가 모두 떠안게 된다.

지금의 혼란은 예견된 결과였다. 문제는 이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더 큰 갈등을 막기 위한 합리적 보완에 나설 것인가이다. 국회는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입법의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 논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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