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세계순례대회가 지난달 27일 전북 전주시 풍남문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아름다운 순례, 홀로 또 함 께’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10월 4일까지 8일간 진행된다. 사진은 지난해 9월 28일 열린 세계순례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순례길을 걷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종교성지화사업에 뿔난 불교계 불참, 반쪽행사로 전락 
종단 간 이해관계로 취지 변질 ‘국비지원 중단’ 우려 커져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종교 간 벽을 넘어 화합의 축제를 여는 ‘2014세계순례대회’가 발걸음을 뗐다. 순례길은 전라북도 내의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유적지와 역사·문화 자원을 순례하는 여정 속에서 서로를 배우고 체험하는 상생의 길이다. 하지만 불교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을 선언, 종교·사회의 상생과 화합이라는 애초 대회 취지가 퇴색해 우려를 낳고 있다.

전라북도와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회는 4억 5000만 원(국비 1억 5000만 원, 도 1억 5000만 원, 관련 시·군 1억 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아름다운 순례, 홀로 또 함께’라는 주제로 지난달 27일부터 세계순례대회를 개최했다.

4일까지 8일간 240㎞의 순례길을 걷는 대회는 올해 문화와 어우러진 콘텐츠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종교인뿐 아니라 청년, 청소년, 부부,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계층이 순례에 참여하도록 배려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4세계순례대회는 지난달 27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임동창 명창의 순례아리랑 공연을 시작으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자연·문화유산 온몸으로… ‘치유의 시간’

도보순례는 청년순례 인문학 캠프 및 멘토와 함께 걷는 청소년 순례를 마련했다. 청소년 인문학 캠프에는 안도현 시인과 커피트럭 여행자 김현두 씨가 멘토로 참여해 10대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더불어 문학, 미술, 음악, 건축을 비롯해 박물관, 들꽃과 같이 주제를 정해 전문가와 함께 종교문화를 살필 수 있어 눈길을 끌었다.

순례길 거점마다 음악공연, 사진전, 로컬푸드 파티, 종교문화체험 등 상설·특설 프로그램을 마련해 마을 주민과 순례객이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도 준비했다.

28일에는 전주시에 있는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장에서 ‘전북세계순례포럼’을 개최했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계승방안을 모색한 포럼에는 유네스코 종교 간 대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두두 디엔세(세네갈) 씨가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여기에 프랑스 샤르트르 순례길 청년담당 에브라드 브뤼넬 씨, 프랑스 쇠이유협회 청소년담당 줄리앙 게레로 씨,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 책임자인 다니엘 카를로스·후안 카를로스 씨, 일본 시코쿠 순례길 관계자인 토모코 모리오카 씨가 동석해 순례대회의 위상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논했다.

세계순례대회 김수곤 조직위원장은 “올해는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참여 인원이 늘었다”며 “순례자가 맹목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도내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치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뿔난 불교계 “성지화사업, 특정종교 편중”

그러나 세계순례대회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올해도 불교계가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불교계가 불참함에 따라 4대 종단이 2011년부터 사회의 화합과 상생, 구도(求道)를 목적으로 해마다 개최하는 세계순례대회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 대회에 지원되는 국비(1억 5000만 원)도 자칫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조직위원장은 “첫해 4대 종단이 모두 어울려 성공적으로 치렀으나 지난해 삐걱했다”며 “올해도 그 마무리를 못했다. 생각의 차이인 만큼 내년에는 모두 참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썼다.

불교계의 불참은 전주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하는 ‘종교성지화사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종교성지화사업은 전주시가 천주교 성지인 승암산(치명자산)에 올해부터 3년간 380억 원을 들여 ‘세계평화의 전당’을 건립하고 125억 원을 투입해 개신교의 근대선교역사기념관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 계획에 불교계의 성지화사업이 제외됐다. 이 때문에 불교계는 “전북도와 전주시가 특정 종교 편중에 대한 개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종교성지화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세계순례대회가 반쪽행사로 전락했다는 우려와 함께 국내 4대 종단이 손잡고 화합·상생을 도모한다는 취지가 종교계 간 이해관계로 변질됐다는 비판 속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4대 종단 문화유적 240㎞ 잇는 순례길

이 같은 우려에도 1만여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순례길은 각 종단이 2009년 전주-완주-김제-익산을 잇는 240㎞(600리)를 연결하면서 ‘아름다운 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845년 한국인 첫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머문 나바위 성지(익산시 망성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10여 명의 순교자가 묻힌 천호성지(완주군 비봉면), 불교문화의 정수인 미륵사지석탑(익산시 금마면), 호남 최초로 1893년 설립된 서문교회(전주시 다가동), 신라 말기에 창건된 송광사(완주군 소양면)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 성지에서는 신부, 목사, 교무 등 각 종단이 깨달음을 전하는 ‘종교 교류의 장’이 마련되고 일부 교회와 절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성지를 잇는 중간에서 가람 이병기 생가와 강암 송성용 기념관, 최명희 문학관, 한옥마을, 만경강 갈대밭, 제남리 둑길, 고산천 숲 속 오솔길도 만날 수 있다.

2일엔 ‘커피트럭 여행자’ 김현두와 함께하는 중고생들의 청소년 순례가 초남이에서 금산사까지 이어지며, 4일에는 반월마을에서 안덕마을까지 편백나무 오솔길과 모악산 숲속길을 걸으며, 걷기 명상을 함께 하는 ‘휴심 명상순례’가 펼쳐진다.

폐막식은 오는 4일 전주전통문화관 놀이마당에서 골목길 순례, 헌공다례, 완주자 발씻김 등으로 구성돼 순례자들과 순례 의미를 되새기는 대동의 자리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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