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늘 강대국의 충돌에 쏠려 있다. 그 사이 수단, 에티오피아, 콩고, 미얀마 등 ‘잊힌 전쟁’은 기록적인 난민과 희생자를 남기면서도 주목받지 못한다. 군비 지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동안 평화와 인권은 각주로 밀려나 있다는 설명이다. 아옐레 아디스 암베루 아프리카 뉴스채널 편집장의 이번 칼럼은 화려한 헤드라인 뒤에 가려진 전선과 국제질서가 직면한 잔혹한 현실을 짚어낸다.

 

아옐레 아디스 암베루 아프리카 뉴스채널 편집장. ⓒ천지일보
아옐레 아디스 암베루 아프리카 뉴스채널 편집장. ⓒ천지일보

작년 세계 군사비 지출 최대 폭 증가

강제 이주민도 사상 최대치 기록해

전 세계 인구 7명 중 1명 분쟁 노출

 

수단·에티오피아·콩고·미얀마 분쟁 외면

가자·우크라 전쟁, 다른 분쟁 방패 역할

구호 활동가 살해 등 인도법 존중 무산

강대국 선택적 인권 잣대 바로 세워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그렇지 않다. 강대국이나 그들의 대리국 사이에서 미사일이 오갈 때 카메라는 그 극적인 장면에 쏠린다.

그 사이 수단, 콩고 동부, 미얀마, 에티오피아, 사헬 일부 등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위기들은 신문 지면 하단으로 밀려난다. 그곳에서는 규칙이 무너지고 인권 침해가 처벌 없이 횡행한다. 결과는 잔혹한 산술이다. 군비 지출은 기록을 갱신하고 난민 규모는 사상 최대를 찍지만 책임 추궁은 점점 사라진다.

세계 군사비 지출은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 정부는 총 2조 7180억 달러를 국방에 쏟아부었다. 이는 전년 대비 9.4% 늘어난 수치로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가파른 연간 증가율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인도가 상위 다섯 나라로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SIPRI 연구원 샤오량은 “2024년 100개국 이상이 군사비를 늘렸다. 종종 다른 예산 분야를 희생하면서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안보 예산이 사회복지와 인도적 지원을 잠식하는 세계 질서 재편을 의미한다.

그 대가로 인류가 치른 피해는 막대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 세계 강제 이주민 수는 1억 2320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단, 가자지구,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 등 전쟁과 박해, 인권 침해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숫자 뒤에는 셀 수 없는 인간적 비극과 생존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들은 평화를 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인도적 수요에 비해 구호 시스템은 만성적 자금 부족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폭력은 지리적으로도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무장 분쟁 위치 및 사건 자료 프로젝트(ACLED)는 작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16만 5000건 이상의 폭력 사건이 발생했으며 전 세계 인구 7명 중 1명이 갈등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됐다고 보고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와 같은 주요 전쟁뿐 아니라 수단, 에티오피아, 미얀마 같은 ‘잊힌 분쟁’에서도 심화되고 있다. 구테흐스 총장은 “갈등은 점점 더 많아지고 복잡해지며 치명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역학은 분쟁이 증가하는 반면 평화 노력은 만성적으로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정치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위험한 국제적 경로를 보여준다.

국제사회가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에만 시선을 집중한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는 각종 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11월 22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분쟁 지역에서 탈출한 티그라이 난민들이 수단 동부 루그디 국경 인근 대기소인 빌리지8에서 원조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국제사회가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에만 시선을 집중한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는 각종 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11월 22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분쟁 지역에서 탈출한 티그라이 난민들이 수단 동부 루그디 국경 인근 대기소인 빌리지8에서 원조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총성이 울리고, 평화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2024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전년 대비 9.4% 늘어난 2조 7180억 달러로, 냉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SIPRI는 “100개국 이상이 군사비를 늘리며 이는 인도적 지원의 만성적 자금난과 ‘잊힌 전쟁’의 장기화를 설명해준다”고 지적했다. 상위 다섯 나라(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인도)가 전체 지출의 60%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미국은 9970억 달러로 세계 전체의 37%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분담액의 66%를 기록했으며 중국은 30년 연속 증가 끝에 3140억 달러로 추산됐다.

SIPRI의 제이드 기베르토 리카르는 유럽의 효율성과 대미 의존 문제를 지적하며 “지출 증대만으로 반드시 군사 역량이나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이 크게 강화되지는 않는다”고 경고했다. 독일은 국방 특별기금으로 지출이 28% 늘어나며 통일 이후 처음으로 세계 4위에 올랐다.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7.1%인 1490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우크라이나는 GDP의 34%를 국방에 사용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군사부담’을 기록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65% 늘어난 465억 달러를 지출해 1967년 이후 가장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나토의 주요 목표는 지형도 개편이다. 2024년에는 32개 동맹국 중 18개국이 GDP 대비 2% 목표를 달성했는데 최근 동맹국들은 더 큰 야망을 신호하며 재무장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재무적 우선순위 뒤에는 기회비용이 뚜렷하다. 유엔은 2025년 7월 말 기준 1억 8120만명을 지원하기 위해 454억 달러를 요청했지만 충당된 금액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아이티 같은 경우 8월 중순까지 모금률이 9%에 그쳤다. 군비 지출은 생산적 연구개발과 연계되지 않는 한 사회투자를 잠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분석도 나온다. 즉 기록적인 군비 증강은 기록적인 인도적 필요와 상승하는 국가부채와 정면 충돌하며 예방·보호·회복의 공간을 좁히고 있다.

이번 기사의 논지 즉 화려한 열강의 충돌이 더 치명적인 ‘카메라 밖’ 전쟁과 인권 침해를 가린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바로 이 지출 장부다. SIPRI의 팩트시트는 2015~2024년 동안 37% 증가와 더 높은 ‘세계 군사 부담(세계 GDP의 2.5%)’을 기록했음을 보여주며 원조 예산은 흔들리고 있다. SIPRI의 샤오량의 말대로 “우리가 오늘 택하는 선택의 대가는 앞으로 수년 동안 사회를 형성할 것”이다. 이 숫자들은 단순히 탱크와 전투기를 집계하는 게 아니다. 평화가 ‘각주에 묻히는’ 좁아진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천지일보 2025.09.07.
ⓒ천지일보 2025.09.07.

◆잊힌 전쟁들: 수단과 에티오피아

수단과 에티오피아는 ‘망각된 전쟁’의 전형이다. 수단에서는 2년 넘게 군과 반군인 신속지원군(RSF)이, 에티오피아에서는 아마라 파노 민병대와 연방군이 충돌하며 민족 학살, 아사 포위, 대규모 강제 이주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과 독립적인 목격자들은 ‘엘파셰르(수단)와 아마라(에티오피아)에서 기아, 수백만의 실향, 조직적 성폭력, 치솟는 사망자’로 요약되는 참사를 증언한다. 그러나 국제 뉴스 헤드라인은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 집중돼 있다. 이 왜곡은 무해하지 않다. 이는 정치적 의지, 기부자 예산, 전쟁범죄자들의 ‘감시받고 있다’는 인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회장은 “인류는 우리의 집단적 시선 아래 실패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역시 보도가 과잉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가 부족한 상태다. 가자지구의 파괴와 민간인 대량 학살은 유엔과 인권단체가 광범위하게 기록했다. 수만명이 사망했고 기근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25년 6~7월 수년 만에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해 전쟁의 잔혹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두 전쟁은 외교적 역량과 군수 물자를 빨아들이며 다른 곳의 잔혹 행위가 은폐되는 방패가 되고 있다.

이제 시선을 동쪽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을 보자. 분쟁이 격화하면서 이미 심각했던 난민 위기는 더 악화됐고 수백만명이 떠돌며 인도적 지원 필요는 치솟고, 국경을 넘는 긴장이 전쟁을 확전시킬 위험이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인권 감시단체들은 말한다. 공습과 대규모 구금이 일상이 됐다. 그러나 이들 전쟁은 국제 미디어 사이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으면서도 인류 고통의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인권은 무너지고, 법은 선택적 적용

인권의 장부 역시 냉혹하다. 2024년 구호 활동가 383명이 전 세계에서 살해됐는데 절반 가까이가 가자지구에서 발생했다. 이는 국제인도법 존중이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섬뜩한 지표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올해 보고서에서 “강대 민주국가들이 가자지구와 수단 같은 곳에서 인권을 수호하는 데 절대적으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역시 2025년 조사에서 전 세계적인 억압, 전쟁 관련 인권 침해, 책임성 붕괴를 기록했다. 법이 선택적으로 적용될 때 가해자들은 어디서든 같은 교훈을 배운다. “잔혹함은 통한다”는 것이다.

작은 전쟁이 침묵 속에 묻히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전략적 이해관계의 편향 때문이다. 강대국 경쟁에서 주변부로 간주된 위기는 주목과 자원을 얻기 힘들다. 둘째, 서사의 복잡성 때문이다. 다자적·혼란스러운 전쟁은 ‘양자 대결’ 구도보다 설명하기 어려워 정치인과 언론이 외면한다. 셋째, 자원의 포획. 치솟는 군비와 무기 이전이 외교와 인도적 대응을 압도한다. 국제위기그룹(ICG)은 올해 주목해야 할 갈등 목록에 수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시리아, 아이티 등을 올렸다. 이는 위기가 초강대국 이야기의 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증거다.

결국 관심의 산술은 냉혹하다. 화려한 전쟁이 공감을 독점한다. 그러나 법은 ‘유행하는 피해자’와 ‘망각된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ICRC와 적십자연맹(IFRC)은 “국제사회는 전쟁 규칙이 무시되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현재 상황을 ‘재앙의 판도라 상자’라 부르며 인권이 독재자와 전쟁광들에 의해 질식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27일 수단 하르툼 남쪽 40㎞ 떨어진 알칼랄라 알라파 시장에 도착한 수단정부군(SAF) 대원들. (출처: 뉴시스)
지난 3월 27일 수단 하르툼 남쪽 40㎞ 떨어진 알칼랄라 알라파 시장에 도착한 수단정부군(SAF) 대원들. (출처: 뉴시스)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일관성을 회복해야 한다. 무기 이전과 외교적 지원은 국제인도법·인권법 준수 여부에 따라 조건부여야 한다. 이는 가자지구 민간인 폭격,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미얀마 공습, 다르푸르 학살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둘째, 조명을 재분배해야 한다. 현장 기자, 시민사회, 보호 네트워크 등 최전선 모니터들을 지원·활용하고, 그들의 보고를 뉴스룸과 의회가 반영해야 한다. ACLED 지표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현장 업데이트는 이미 존재한다.

셋째, 인도적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 기록적인 수요에 걸맞은 다년간의 유연한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콩고, 수단, 미얀마, 사헬에 헤드라인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배분돼야 한다.

넷째, 예방과 정의에 투자해야 한다. 지역 협상(콩고 대호수 지역), 국지적 휴전(수단·미얀마) 같은 외교를 지원하고 증거 보존과 제재를 확대하며 유엔 인권 메커니즘과 인도적 접근을 방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추세는 이어질 것이다. 군사비는 늘고, 민간인 사망자는 늘고, 난민은 기록적으로 불어나며, 법의 공간은 줄어든다. 이를 되돌리려면 지도자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국제질서의 시험대로 봐야 한다.

구테흐스 총장이 회원국들에 한 말은 분명하다. “오늘날 가장 극적으로 결핍된 것은 평화다.” 평화가 수사적 구호가 아니라 정책의 중심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평화는 지금처럼 각주에 묻힌 채 수백만명이 주변부에서 피 흘리는 동안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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