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인구 고령화, 인재 유출, 인력난이라는 ‘삼중 위기’에 직면한 유럽이 로봇공학과 자동화를 통해 노동력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지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최신 통계와 브뤼겔 연구소의 분석, 그리고 업계 인사와 전문가들의 발언을 토대로 로봇이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산업 구조와 노동 개념 자체를 재정의할 가능성을 짚는다. 칼럼은 아마존, KUKA, ABB, 옥티니언 등 실제 사례를 통해 물류·제조·의료·농업 분야의 자동화 현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기계와 인간이 협력하는 노동환경’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정치권이 이민 해법을 두고 논쟁하는 사이 현장에서 이미 변화가 진행 중임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기술 전환이 향후 유럽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칠 함의를 묻는 글이다.
이 글의 필자인 앤디 버마웃(Andy Vermaut)은 EU 기후협약 대사다. 그는 세계 공공외교위원회, 유럽 커뮤니티 하우스, 기본권 운동(Postversa)의 대표로 활동하며 수단부터 이란까지 전 세계 인권 침해를 폭로해온 인권 옹호자다. 더불어 버마웃은 20년 경력의 수상 탐사보도 기자이자 UN과 각국 정상회의에서 기후 정의와 인권 책임을 결합한 메시지를 전하는 연설가다. 그는 기후와 기술, 인권을 잇는 폭넓은 시각을 바탕으로 이번 칼럼에서 유럽 노동의 미래를 조망했다.

고령화·인재 유출·일자리 공백 속 유럽
로봇·자동화가 ‘삼중 위기’ 해법 될까
EU, 950억 유로 투입해 AI·로봇 연구
정치 논쟁 중 유럽의 노동 지형 변화
인간보다 정밀하게 로봇이 딸기 수확
물류·제조·의료·농업 이미 기술 혁신
유럽은 인구학적 ‘퍼펙트 스톰’에 직면해 있다. 급격히 고령화하는 인구, 가속화되는 인재 유출, 그리고 심각한 일자리 공백이 겹친 것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분기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3%가 심각한 인력난을 보고하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일자리 4200만개가 비어 있는 상황은 긴급한 해결책을 요구한다.
브뤼겔 연구소가 지난 9월 EU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획기적인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핵심 노동력(20~64세)은 2050년까지 20% 감소해 2억 700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충격적인 예측은 현재의 이민 수준을 반영한 수치다. 그럼에도 급증하는 극우 세력의 선거 승리는 이민 중심 해법에 대한 대중의 강한 거부감을 보여준다.
영국 투자사 BCCM 그룹의 창립자인 블라디미르 코코린은 “자동화와 로봇공학은 미래 지향적 과장을 넘어서 오늘날의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는 작동 가능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는 곳곳에 있다. 아마존의 75만대 규모 로봇군, 특히 완전 자율주행 창고 로봇인 ‘프로테우스(Proteus)’는 인간을 능가하는 정밀도로 물류를 처리한다. 모건스탠리 분석가들은 이러한 자동화가 연간 100억 달러의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계산했다.
독일의 산업 거인 쿠카(KUKA)와 스위스의 ABB 로보틱스는 자동차 공장에서 관절형 로봇 팔을 투입해 밤샘 용접 작업을 피로 없이 수행한다.
의료 로봇도 변화를 이끌고 있다. 다빈치(da Vinci) 로봇 수술 시스템은 외과의 감독 아래 정교한 수술을 수행하고 딜리전트 로보틱스의 ‘목시(Moxi)’는 병원 복도를 오가며 의약품을 전달한다. 목시의 공동 개발자인 안드레아 토마즈 박사는 “이들은 대체제가 아니라 ‘전력 증강기’”라며 “이들은 간호사들이 더 높은 부가가치의 환자 돌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농업 혁신은 벨기에에서 등장했다.
벨기에의 옥티니언(Octinion)이 개발한 ‘루비온(Rubion)’ 로봇은 인간보다 부드럽고 정밀하게 딸기를 수확해준다. 이는 계절 노동력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특히 중요하다.
유럽은 현재 산업 자동화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은 인구 1만명당 로봇 수에서 싱가포르와 한국에 이어 3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중국의 100만대 규모 로봇군과 미국의 공격적인 투자 확대가 이 선두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EU의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은 이에 대한 브뤼셀의 대응으로,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연구에 950억 유로를 배정했다.
코코린은 전략적 집중을 강조한다. 그는 “수요는 특수 기능 로봇에 집중된다. 분류, 용접, 수확 같은 단일 기능 로봇은 인간형 시연 모델보다 더 빠르고 저렴하게 통합된다”고 분석했다.
ABB 로보틱스의 사미 아티야 사장은 로봇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겁거나 반복적인 업무는 로봇에 맡기고 인간은 세밀한 판단력, 대인관계 능력, 전문적 수작업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설계하는 것은 협업 작업장이지 무인 공장이 아니다”라며 이런 접근이 산업 현장의 안전성을 높이고 노동의 인간적 가치를 지킨다고 설명했다.
정치인들이 이민자 수용 할당을 두고 논쟁하는 사이 로봇들은 이미 공장을 청소하고, 재활용품을 분류하며, 하루 24시간 병가 없이 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코코린의 결론은 지정학적 무게감을 지닌다.
“로봇공학은 인구 현실과 의미 있는 노동을 원하는 시민의 요구에 대한 유럽의 논리적 해답이다. 우리의 리더십은 세계적인 ‘스마트 노동’ 패러다임을 개척할 수 있다.”
노동력이 줄어드는 가운데 유럽의 기술 전환은 생산성 자체의 의미를 재정의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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