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정책과 유럽연합(EU) 사안을 취재해 온 프리랜서 기자 보얀 스토이코브스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유럽의 정체성과 책임을 비추는 거울로 바라본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논의하는 사이 유럽은 여전히 방관자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제는 평화의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담았다. 단순한 연대와 지원을 넘어 전략적 행위자로서 책임을 다할 때 유럽이 비로소 세계적 안정의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크라 전쟁서 한발 물러난 유럽
연대와 지원 넘어 평화 구축 나서야
에너지 의존 축소·제재 강화·안보 조율
힘과 지렛대 뒷받침된 실질 행동 필요
장기적 전략, 재건·억제·외교 동시 추진
어떤 합의든 국제법과 현재 전선 존중
우크라 전쟁, 결국 유럽 신뢰성 시험대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이상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이는 유럽이 마주한 가장 위험한 거울이다. 이는 수정주의 강대국의 잔혹함을 비추는 동시에 유럽 스스로의 정체성을 묻는다.
과연 유럽은 여전히 평화의 수호자로 행동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분쟁 관리자 역할에 만족할 것인가?
매일 드러나는 무관심의 결과는 명백하다. 포격으로 파괴된 도시, 집을 잃은 가족들, 그리고 대륙의 도덕적 권위가 미묘하지만 끊임없이 침식되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 사이 세계는 미국과 러시아 같은 초강대국 대표들이 알래스카 같은 곳에서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논의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은 언제나 큰 위험을 수반하지만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게 실존적 사안이다. 영토 경계, 휴전, 안보 보장 문제까지 모두 협상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정치적·경제적 안정이 전쟁 결과와 직결되는 유럽은 이 논의에서 거의 늘 빠져 있다.
◆먼 곳의 관찰자
나는 2023년 초, 전쟁이 시작된 지 몇 달 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을 지날 때를 기억한다. 그때도 지금도 이 도시는 끝나지 않는 갈등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깨진 창문, 반쯤 무너진 도로, 그리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회복력의 울림.
도시 곳곳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 깃발이 걸려 있었다. 이는 자부심, 저항, 그리고 어쩌면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전쟁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희망 아래에는 뚜렷한 질문이 떠돌고 있다. 유럽은 과연 언제 ‘먼 곳의 관찰자’ 이상의 존재로 설 수 있는가?
EU 집행위원회의 최근 성명은 그 질문에 대한 직설적인 답변이었다. 성명은 “어떤 평화의 길도 우크라이나의 안보와 유럽의 핵심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외교는 우크라이나가 자기 운명의 중심에 서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으며 유럽은 말뿐만 아니라 영향력, 지렛대, 실행 의지를 가져와야 한다고 못박았다.
사실 유럽은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왔다. 금융 지원, 인도적 구호, 제재, 군사적 원조, 국경 개방과 난민 임시 보호 제공, 무기와 비살상 장비 지원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과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이제 유럽은 연대라는 명분 뒤에 숨을 수 없다. 전략적 행위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유럽의 손에 쥔 외교란 조용한 방에서의 세련된 협상이 아니다. 그것은 힘겹고, 복잡하며, 종종 불편하다. EU의 최근 선언은 평화를 위한 세 가지 기둥을 제시했다. 모든 당사자와의 관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 그리고 협상 과정에서의 우크라이나의 참여다. 원칙은 단순하다. “우크라이나 없는 우크라이나에 관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실행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유럽은 미국의 리더십에만 의존할 수 없고 결과를 외부 행위자들에게 맡겨서도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유럽이 반응적 연대에서 선제적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영향력을 실질적 결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교는 힘에 뒷받침돼야 하며 힘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 단계적 축소, 제재 강화, 동맹국과의 안보 조율 같은 조치들은 유럽이 신뢰할 만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게 하는 지렛대다.
나는 최근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의 한 동료와 대화했다. 그는 최전선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매일 싸우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앞장서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의 생존 권리를 세계에 알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평화는 자선이 아니다. 편의를 위한 거래도 아니다. 그것은 원칙의 확고한 방어이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EU의 성명은 어떠한 합의도 현재의 전선과 국제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력으로 국경이 바뀌어서는 안 되며 우크라이나의 동의 없는 합의는 안 된다. 이는 유럽이 코카서스에서 사헬, 발칸 반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쟁 지역에 적용해야 할 교훈이다. 만약 유럽이 이곳에서 신뢰성을 쌓는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안정의 닻이 될 수 있다.

◆유럽의 시험대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의 다리 위에 서 있던 어느 저녁, 나는 유럽을 하나의 시험대로 떠올렸다. 바르다르 강 위로 번지는 도시의 불빛은 역사와 야망 사이의 긴장을 비췄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유럽의 순간도 바로 그와 같다. 관료주의와 수사를 넘어 결단력 있고 원칙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받는 자리다.
평화는 직선이 아니다. 평화는 반복적이고 좌절스럽고 도덕적 인내를 요구한다. 유럽은 과거 시리아, 리비아,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이미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실패는 행동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유럽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가능한 곳에서 행동하고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재건, 억제, 외교 이 모든 것이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미래를 주도하는 가운데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유럽의 리더십은 우크라이나를 넘어선 메아리를 낼 것이다. 남코카카스와 발칸 반도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단순한 소프트 파워나 규제·경제 대국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다. 유럽은 결과를 형성할 수 있다. 규칙을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성과 원칙, 전략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EU, 그리고 각 회원국들에게 ‘신뢰성의 전쟁’이기도 하다. 방관자로 남는다면 역사의 혹독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리더십을 택하는 것은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투자, 용기, 그리고 불편한 현실을 감당할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안인 무(無)행동은 훨씬 더 나쁘다.
유럽은 이번 위기에서 우크라이나의 ‘지원자’를 넘어 진정한 ‘평화 중재자’로 등장할 기회를 맞았다. 지금이야말로 유럽이 스스로를 정의하고 연대·힘·원칙이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유럽 프로젝트가 세계적 안정의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순간이다.
만약 유럽이 정치적·외교적·전략적으로 나선다면 단지 전쟁을 끝내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원칙이 중요시되고 정의를 훼손하지 않은 채 평화를 추구할 수 있으며 유럽의 목소리가 마침내 그 책임만큼의 무게를 가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라는 거울이 우리에게 되물어본다. 유럽은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지켜만 볼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