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사건 당시 경찰 공무원 사이에서는 경감 2000만원, 경정 3000만원 등 승진 청탁비로 주는 것이 관행적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지난달 18일 전남경찰청 승진 청탁 비리에 연루된 피고인 7명에 대한 광주지법 형사 3부(부장판사 김성흠)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변호인이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관행에 따라 돈을 받아 당시 전남경찰청장에게 교부한 것이지 수수할 목적으로 금액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2021년 당시 브로커 등 중간 전달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승진 청탁을 들어준 의혹을 받는 김모 전 전남경찰청장은 검찰 수사 중이던 지난해 11월 경기 하남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루된 현직 경감 등 5명은 파면 처분을 당하는 것은 물론, 브로커인 전직 경감 등을 포함한 피고인 7명은 많게는 징역 3년에서 적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1심에서 선고받았다. 오는 29일 광주지법 동일 법정에서 이들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다.
이 사건을 보면 경찰들 사이에서 불법 승진 청탁이 금액이 정해져 있을 만큼 일반적이고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마치 중앙 관직에서 향락과 부정부패를 일삼고 당파 싸움에만 몰두한 한편, 탐관오리가 득세하면서 매관매직이 성행한 조선 후기 시대를 연상케 한다.
비단 브로커가 승진 대가로만 돈을 받고 건넸을까. 승진 대가보다 수사 무마는 더 쉬울는지 모른다. 실제 울산경찰청 간부로 퇴직했다가 한 대형 법무법인에서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사건 관계인들이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도박방조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자 과거 친하게 지냈던 경찰관들에게 불구속 수사를 청탁하고 사건 관계인들로부터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최근 기소되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사 무마의 경우 승진 청탁에 대가로 쓰인 금액 단위인 수천만원보다 훨씬 많은 수억원대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대형 사기 사건의 범죄수익금이 수천억원대에서 많게는 수조원대에 이르는 경우 수사 무마로 사용되는 금액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기 사건의 경우 묻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2022년 사기범죄 검거율을 보면 총 사기범죄 5만 8302건에서 54.6%에 그쳤다. 즉 절반가량 사기꾼이 잡히지 않는 셈이다.
특히 제시한 보상 계획만 보면 누가 보더라도 사기인지 알 수 있고 피해액이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에 달하는 대형 사기사건 피의자들도 1년이 넘게 구속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천지일보가 집중 취재 보도한 워너비그룹의 경우 지난해 1월 금융감독원에서 소비자 주의 경보를 발령하고 그해 6월 경찰 압수수색이 이뤄진 후 1년이 넘게 1명도 구속되지 않았다.
지난해 2월부터 출금이 막혔고 피해액이 1조원대로 추정되는 와콘의 상위 기업인 SAK-3(싹쓰리)도 경찰 수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더스그룹 휴스템코리아도 서울시민생사법경찰단에서 수사하지 않았다면 구속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에서는 압수수색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케이삼흥의 경우 김현재 회장이 지난 2006년 구속된 바 있고 사기 혐의로 수차례 기소된 사기 상습범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원금 및 배당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한 이후 아직까지 수사 중이다.
케이삼흥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 5월 초 대대적인 언론 보도로 불과 약 일주일 만인 그달 14일 압수수색이 진행돼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압수수색 6일 후인 5월 20일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브리핑에서 케이삼흥 수사와 관련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 분석이 조만간 마무리되는데, 이후 본격적으로 관련자를 소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압수수색 분석이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지만, 2개월이 지나 여태껏 잠잠한 상황이다. 1인당 많게는 수십억원에서 적게는 수천만원의 피해를 입은 고소인들 상당수는 “정관계 등에서 돈을 받아먹지 않고서는 이렇게 수사가 늦어질 이유가 없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또 답답한 마음에 서울경찰청 금융수사대 담당자에게 수사 진행 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자 “피해 금액 집계가 완료되지 않았고, 고소장이 계속 들어와 수사가 늦어진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핵심 피의자는 특정됐고 범죄 사실은 일반인도 다 아는 사기 사건을 구속하지 않는 이유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다. 법원에서는 증거인멸이나 도망할 염려를 이유로 피의자를 구속하게 되는데, 경찰이 증거인멸할 시간을 벌어준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탐관오리가 득세해 매관매직이 성행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다. 사기 피해자들도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증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전 재산에 대출까지 받아 대출금 이자만 갚느라 하루에 알바를 2~3개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급기야 스스로 생명을 위협하거나 유언장을 남기며 극단적 선택에 이른 피해자도 있었다.
경찰은 부정 청탁 의심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라도 늦장 수사를 멈추고 대형 사기 사건 피의자들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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