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1991년 8월 14일 첫 증언, 수요시위 1139차 맞아
“만날 ‘사죄해라·배상해라’ 해도 아무 반응 없어
프란치스코 교황, 日 사과하라 말해줬으면…”
[천지일보=이혜림, 김민아 기자] “지난 일들을 고백하는 데 용기? 어려움? 그런 거 없어. 오늘내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말 못할 게 뭐가 있어.”
하얗게 센 머리와 굽은 어깨, 궂은 일을 많이 해 마디가 굵어진 손. 외소해 보이는 체구의 이옥선(87) 할머니는 치아가 빠진 입으로 힘들게 입을 뗐다.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앞두고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서 기자와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는 많은 사람 앞에서 하는 증언이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13일로 1139차를 맞는 수요시위는 지난 1991년 8월 14일 사람들 앞에서 최초로 공개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용기를 얻은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매주 수요일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꾸준히 수요시위에 참석했던 이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만날 할머니들끼리 똑같은 말 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아무리 일본 대사관 앞에 나가서 ‘사죄해라. 배상해라’고 해도 오늘날까지 소식이 없으니 다른 나라에서 우리에게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미국에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1000회가 넘는 수요시위에도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는커녕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미국에 가게 됐다는 것이 이 할머니의 설명이다.
이 할머니와 강일출(86)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제사회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7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작은 성과를 달성했다.
지난 4일 LA 연방지법은 일본계 주민들의 모임인 ‘역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세계 연합회’가 제기한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철거 소송’을 기각했다. 일각에선 23일 미국을 방문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연방지법에 제출한 증언기록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지난달 30일 미국 정부 최고기관인 백악관을 방문해 애니스코프 비서관으로부터 미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또 국무부와도 비공개 면담을 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5세에 ‘우리 집 양딸로 들어오면 학교를 보내주겠다’는 제의에 의문의 여성을 따라갔다. 하지만 그 여성은 학교를 보내주지 않고 식당에서 일을 시켰다. 남의집살이하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술집에 팔려가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된 이 할머니는 어느 날 건강한 체구의 남성 둘에게 이끌려 큰 트럭에 타게 됐다.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 위안소에서 성 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해방 후 한국에 왔지만 생활이 힘들어 노숙자 생활을 했다.
세례명이 안나인 이 할머니는 힘든 마음에 성당을 찾기 시작해 20년 전 중국에서 세례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광주시 퇴촌 성당에 교적을 두고 있다. 오는 14일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진 못하지만 이 할머니는 “항상 책을 보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했고, 바라는 게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교황님이 와서 일본 보고 사죄하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 별세로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국내 49명, 해외 5명)이다. 이 할머니는 “이제는 할머니들이 80~90세를 다 넘겼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눈다”며 먼저 간 피해자 할머니들을 향해 “가서 좋은 자리 많이 잡아 놔라”고 넋두리를 했다.
“우리는 이래도 저래도 죄인이야. 일본놈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데 이런 험악한 일이 어디 있어. 우린 돈을 바라는 게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일본이 반성하고 법적으로 사죄해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거야. 다 죽기 전에. 그게 우리의 바람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