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장(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정무위 간사인 김병욱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에 대한 당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고승범 금융위원장(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정무위 간사인 김병욱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에 대한 당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당정 카드 수수료 0.3%p↓

고승범 “4700억 경감할 것”

카드사 연신 희망퇴직 진행

밴서비스 유료 가능성 제기

‘혜자카드’ 단종 빨라질 듯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정부가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최대 0.3%p 인하하기로 결정하면서 카드사를 비롯해 일반 소비자와 소상공인에게도 피해가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번 인하를 통해 연간 4700억원의 수수료를 경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줄어든 만큼의 손실액은 카드사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최근 2년간 본업인 신용판매업에서 13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카드사는 연이어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또 ‘혜자 카드’가 줄줄이 단종되고 연회비도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정부의 생색내기와 지나친 ‘표(票)퓰리즘’으로 사용자, 카드사 모두의 부담이 늘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 카드 수수료 0.8%서 0.5%로 인하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는 당정회의를 열고 내년 카드 가맹점 수수료 개편안을 마련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적격비용 기반 수수료 체계를 도입, 3년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하고 있다. 적격비용은 신용카드의 ▲자금조달비용 ▲위험관리비용 ▲마케팅비용 등으로 구성된 결제 원가를 말한다.

이번 개편안에 따라 중소가맹점 중 ▲연 매출 3억원 이하 0.8%→0.5% ▲3억~5억원 1.3%→1.1% ▲5억~10억원 1.4%→1.25% ▲10억~30억원 1.6%→1.5%로 수수료율이 각각 낮아진다. 매출 30억원 초과 가맹점에는 현재 1.9% 이상 수수료율이 유지된다.

체크카드도 ▲3억원 이하 0.5%→0.25% ▲3억~5억원 1.0%→ 0.85% ▲5억~10억원 1.1%→1.0% ▲10억~30억원 1.3%→1.25%로 내려갔다. 조정된 수수료율은 오는 2022~2025년 3년 동안 적용된다.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전체 가맹점의 75%를 차지하는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 220만개의 수수료 부담이 40%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적격비용 산정 결과 2018년 이후 추가적인 수수료 부담경감 가능 금액은 약 6900억원”이라며 “2018년 이후 우대수수료율 적용 대상 확대 등을 통해 가맹점 수수료 부담을 줄인 금액 2200억원을 감안하면 수수료율 조정을 통한 경감금액은 약 4700억원”이라고 말했다.

◆고사 직전 카드사 “이러려고 비용절감 했나”

고 위원장이 약 4700억원을 경감할 수 있다고 계산했지만, 가맹점들이 수수료율 우대를 소급적용받은 사례까지 더하면 총 6900억원이 경감된다.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다른 누군가가 손해를 보는 자본시장의 섭리에 따라, 카드사들이 경감된 금액만큼 손실을 보게 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여신금융협회는 지난 2년(2019~2020년)간 카드업계의 가맹점수수료 부문 영업이익이 1317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2013~2015년 5000억원에서 2016~2018년 245억원으로 급감한 이후 적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 내년부터 카드론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되면서 카드사의 수익성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업계 내에서는 수익 보존을 위해 희망퇴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 위원장이 4700억원 경감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현재 카드업계의 신용판매는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카드 수수료가 다시 인하되는 점은 수익성 악화가 우려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카드사가 3년 동안 운영비를 줄이면 이를 수수료 인하 여력으로 간주해 다시 수수료율을 낮추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적격비용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논의를 통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의식해 카드수수료 인하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내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카드사는 신용판매업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영업사원이 90% 감소했다”며 “정치권이 소상공인의 표를 얻기 위해 카드사의 희생만 요구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카드업계 내에서 적정 마진을 얻기 위해선 1.5%의 수수료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이번 조정으로 적자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제일 필요한 것은 소상공인과 카드업계끼리 해결하게 하는 것이지,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면접.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면접.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카드사, 인건비·마케팅비 줄이기 나서나

실제로 카드사들은 연이어 희망퇴직에 나서며 몸집 줄이기를 시작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카드사의 어려움을 고려해 신사업 부수업무 범위 확대를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해 수억원의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에 차라리 인건비, 관리비,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국민카드는 최대 36개월치 임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이에 10여명의 직원이 신청한 상태다.

롯데카드는 오는 28일까지 근속 10년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근속기간에 따라 32개월에서 최대 48개월의 기본급과 최대 2000만원의 학자금을 지급한다.

다만 올해 희망퇴직 규모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진행한 희망퇴직으로 이미 200여명이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카드 역시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966년생부터 1967년생 소속장급 직원과 부장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희망퇴직 신청 인원에게는 근속기간에 따라 최대 36개월의 기본급과 함께 지원금 등을 추가 지급한다.

이에 카드 노동조합은 “카드 수수료의 인하 중단과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한 우리 카드 노동자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과 유감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앞서 이들은 카드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 등을 통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중단’과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폐지’ ‘빅테크 기업의 수수료율 하향’ 등을 주장하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사용자·소상공인들에게도 손해 가능성↑

이번 카드 수수료 인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도 피해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소상공인에게 무료로 제공한 벤사(카드결제기 업체) 서비스가 유료화하는 등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부의 ‘고무줄식 거리두기’로 인한 것일 뿐, 카드 수수료가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적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연 매출 5억원 이하 가맹점은 수수료 0.8~1.3%에서 세액 공제율 1.3%를 적용해 사실상 카드 수수료 부담이 없거나 0.5%를 돌려받고 있다.

아울러 수익성 악화로 인해 카드사가 사용자 혜택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혜자 카드’를 줄줄이 단종하고 연회비를 올릴 가능성이 제기되며 소비자도 울상을 짓게 될 전망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단종된 신용·체크카드는 연평균 200종에 달한다. 지난 2019년과 2020년 단종된 카드는 202종이다. 올해도 지난 15일 기준 8개 전업카드사의 단종 카드는 192종에 이른다.

통상적으로 카드 수수료율이 인하되면 카드사는 수익성 방어를 위해 가장 먼저 추가적인 비용절감을 시도한다. 이 중에서도 마케팅 활동을 줄이면 소비 혜택도 줄게 된다.

또 카드사들이 수익성 분석을 통해 향후 5년간 흑자를 낼 수 있는 상품만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수익성 분석체계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면서 이번 수수료율 인하는 소비자들의 카드 혜택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국내 유입으로 방역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12월 첫 주말을 맞은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하다. 정부는 이달 초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오는 6일부터 4주 동안 사적모임 수도권 6인, 비수도권 8인까지 제한하는 등의 특별방역대책 추가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천지일보 2021.12.4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국내 유입으로 방역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12월 첫 주말을 맞은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하다. 정부는 이달 초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오는 6일부터 4주 동안 사적모임 수도권 6인, 비수도권 8인까지 제한하는 등의 특별방역대책 추가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천지일보 20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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