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올해 들어 시중은행에서 전세대출이 10% 이상 증가한 가운데, 증가분 중 98%가 실제 전세 계약을 위한 대출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세값 급등에 따른 불가피한 자금 수요가 전세자금 대출 증가의 절대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의 주 원인인 전세대출 감축을 단행할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에 대해 직격탄을 가할 수 있어 고심이 깊은 분위기다. 금융당국의 모호한 입장에 전세대출마저 막힐 수 있다는 불안심리로 은행권에 전세대출을 문의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8월 말 기준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모두 119조 9670억원이다. 이 중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이뤄진 생활안정자금 대출은 전세자금대출의 1.94%(2조 3235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98.1%는 실제 전세계약을 위한 대출이라는 의미다.
전세대출은 새로 전세를 얻거나 전세보증금이 올랐을 때 주로 이용되는 상품이다. 시중은행은 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 등 보증을 바탕으로 전세보증금의 80%까지 빌려주고 있다. 신혼부부나 청년 등 특정 조건을 갖추면 90%대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세보증금이 올랐거나 새로 전세를 얻을 때 이용하는 이런 전세자금 대출은 전세 계약이 이뤄지면 바로 집주인 계좌로 대출액이 입금되는 구조다. 전세자금 대출이 가장 명확한 실수요 자금 대출로 분류되는 이유다.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생활안정자금을 빌릴 수도 있지만 이 같은 경우는 수요가 적은 데다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5대 은행의 전체 전세자금 대출은 지난해 말 105조 2127억원에서 올해 8월 말 119조 9670억원으로 14%가량 늘었다. 반면 생활안정자금 전세대출은 약 8% 감소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전세자금 대출 급증의 이유를 부동산 시장의 전세값 폭등을 인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세자금 대출이 명확한 실수요 자금 대출임에도 이마저 규제한다면 시장에 주는 충격은 상당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KB리브부동산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전국과 서울을 기준으로 작년 말보다 각 8.6%(107.2→116.3), 8.7%(113.3→123.2) 올랐다.
이러한 상황에 금융당국은 전세자금 대출 규제 가능성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많이 늘었으니 계속 들여다보겠다는 식의 애매한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금융지주회장단과의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전세대출은 실수요자가 많으니 여건 보면서 다시 한번 볼 것”이라고 말했다.
혼동을 주는 금융당국의 입장에 당장 한두 달 사이 전세를 구해야 하는 세입자들이 은행 창구에 ‘전세대출이 가능한지, 한도가 줄어드는지’ 등을 묻는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전세자금 대출뿐 아니라 당국이 최근 많이 늘어난 대출 항목으로 언급한 집단대출도 대표적 실수요 자금 수요다. 집단대출은 아파트 분양 등과 관련된 중도금, 잔금 대출을 의미한다. 대부분 대출금이 대출자가 아니라 시행사, 건설사 계좌로 바로 들어간다.
개인집단대출은 지난해 12월 말 148조 5317억원에서 올해 8월 말 152조 9344억원으로 4.0%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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