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올해 서울의 노후 아파트값이 신축 아파트보다 2배 더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조사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준공 20년 초과 아파트 매매값은 올해 들어 지난주까지 누적 기준 2.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준공 5년 이하인 신축이 1.2%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정확히 2배 높은 수치다. 서울 5개 권역별로 보면 20년 초과 아파트값은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이 3.08%로 가장 많이 올랐고 동북권 2.35%, 서남권 2.07%, 서북권 1.63%, 도심권 1.21% 등의 순이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천지일보 2021.6.9](https://cdn.newscj.com/news/photo/202106/734534_745991_4136.jpg)
선분양제, 공급에 유리… 부작용도
先자금이동으로 소비자 피해 발생
시세차액 노린 투기수요 몰리는 구조
후분양제, 소비자 권익↑ 건설안전↑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정부의 부동산통계 및 정책을 비판하면서 ‘선분양제’가 아파트값을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의 빠른 공급을 위해 도입된 선분양제로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선분양제와 대안인 후분양제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이 쏠린다.
2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의 선분양은 현재 진행형이다.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은 물론이고, 중·소형 건설사들도 선분양 광고를 내며 분양시장을 끌어가고 있다. 다만 지난 23일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이 2배 가까이 올랐다고 밝혔고, 그 원인 중 하나는 건설업계에 만연한 선분양제라고 꼬집었다.
선분양제란 아파트 등 주택을 짓기 전에 먼저 분양하는 것으로, 시공이 60~100% 완료된 후 분양하는 후분양제와는 대조적이다.
선분양제는 정부가 지난 1970~1980년대 신속한 주택의 공급을 위해 도입했다. 수천 가구의 주택을 짓는 데 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선분양제는 건설사들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중도금 납부 등 입주자들도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데 있어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천정부지인 집값을 두고 선분양제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선분양제가 단순히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 이외의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분양제, 문제는 ‘先 자금 순환’
선분양제의 장점이 자금이 먼저 순환하는 데서 오는 이점이라면, 단점도 자금이 먼저 돌기 때문에 발생한다. 시장 경제에선 자금을 가지고 있는 쪽이 우위에 있는데, 선분양제에선 자금이 판매자인 건설사 측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빨라서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 같은 피해 사례로는 먼저 ‘부실공사 논란’이 있다. 지난 5월 김포의 신축 아파트에선 물이 새는 일이 있었고, 1월에 준공이 완료된 옥정의 아파트에선 하수구에서 오수가 역류하기도 했다. 이 경우 입주자가 분양금을 이미 납부한 상황이고, 환불이 불가능한 분양시장의 특성상 건설사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또 견본주택과 신축 아파트의 내장 차이가 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건설업계는 건축과 내부 실내장식 등 다양한 협력사들이 작업을 하는 특성상 책임 소지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도 입주자들은 기다려야 한다. 아울러 건설사들은 카탈로그에 ‘조감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문구를 표시해 두는 방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반 시설 허위 광고’도 문제가 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분양단지 인근에 아직 지어지지 않은 학교, 상가, 도로, 철도 등 기반 시설이 지어질 예정이라고 광고한다. 예로 최근 발표된 ‘봉담 자이 분양’ 보도의 경우도 ‘제2순환고속도로(송산~봉담(예정)~동탄)’ ‘지구 내에 초등학교가 입주 시점에 맞춰 신설될 예정’ 등 아직 완공되지 않은 기반 시설에 대해 포함하고 있다.
기반 시설이 예정대로 지어진다면 다행이지만,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및 기타 사유로 건설이 미뤄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그 경우 아파트만 먼저 준공돼 덩그러니 남겨진 모습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선분양제, 분양가 부풀린다” 지적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부동산 전문가들이 선분양제를 문제라고 지목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일부 건설사들이 견본주택에서만 고급 내장재를 쓰거나, 아직 계획 단계인 기반 시설을 선분양 시 포함하면서 분양가를 부풀린다는 것이다. 불어난 분양가는 이후 시세에 영향을 주며 아파트값 상승에 영향을 준다.
또 투기수요가 시세차익을 노리고 분양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아파트값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투기수요가 통상 후분양보다 낮은 분양가로 책정되는 선분양에 뛰어들어 이후 시세가 오르면 되판다는 것이다.
서울 전 지역 및 경기도와 세종 등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면서 분양권을 다시 파는 전매는 불가능해졌지만, 자본력이 충분한 투기수요가 의무거주기간을 버티고 이후 차액을 노리고 되파는 수법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울러 선분양제는 당장 살 집이 필요한 수요보다는 2년 이상을 내다보는 수요가 몰리는데, 여기에 투기수요가 집중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투기 수요가 많으면 거래가 활발해져 가격을 올리기 쉽고,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매물을 거두면서 거래절벽 현상이 심해지고, 이는 결국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후분양제, 건설사는 ‘부담’ 소비자는 ‘환영’
부동산 업계 종사자들은 선분양제의 폐단을 후분양제로 대부분 고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건설사가 자금을 먼저 확보하게 되므로 생기는 부작용이나, 준공 후 시세 차액을 노리는 수요가 줄 거란 설명이다.
후분양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설의 60~100%가 끝난 시기에 분양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건설사에선 초기 건설비용을 확보하지 못하면 엄두를 낼 수 없으며, 완공 후에 입주 물량이 미분양으로 남아있게 되면 건설사에서 엄청난 재고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건설사에선 대부분 후분양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고급 브랜드 등을 가지고 있는 대형 건설사들은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중소형 건설사들은 미분양 시의 재고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후분양제가 보편화되면, 먼저는 소비자가 건설사보다 유리해진다. 기존의 선분양제에선 2년 후에나 준공될 아파트를 팸플랫을 보고 사는 것이었다면, 후분양제에선 적어도 60% 이상 완공된 실물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건설사들도 미분양을 우려한다면 시공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책임 소지가 불분명한 문제들도 소비자가 아닌 건설사 측에서 주도적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아직 생기지 않은 허위 기반 시설에 대해서도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정부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앞세워 선분양단지에는 보증을 받게 하면서 후분양제를 독려하는 모습이다.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은 단지에 보증해주지 않으면서다. 보증을 받지 않으면 선분양을 할 수 없다.
건설업계에선 후분양제가 활성화될 경우 주택공급이 위축돼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내에 후분양을 추진할 자본력이 있는 기업들이 한정적이고, 재고 부담으로 공급에 신중하게 되면서 물량이 줄 것이란 주장이다.
또 분양가도 오를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선분양제의 문제가 시세 차액을 노리는 투기수요라면, 후분양제에선 건설사들이 초기 건설비로 마련한 대출금의 이자를 분양가에 포함하는 등 비용부담을 일부 입주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일각에선 후분양제가 건설노동자 인권 및 안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후분양제는 아파트 시공 품질의 향상 등의 이점 외에도 노동자의 안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선분양제에선 노동자 사망이 발생해도 분양이 끝난 이후라 분양가에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후분양제에선 건설사의 이미지가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는 등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건설사가 선분양을 지향하는 가운데 지난해 아파트 부문 건축 시공액 상위 10위 내의 일부 건설사들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것을 보면 전문가들의 이 같은 지적에 무게감이 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