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삼성. (출처: 게티이미지지뱅크)
변화하는 삼성. (출처: 게티이미지지뱅크)

준법감시위 중심으로 삼성그룹 준법경영 실천 나서

이재용 대국민사과… ‘4세 경영’·‘무노조 경영’ 포기

재판부 “준법위, 실효성 지적… 선제적 감시 못해”

이재용 옥중 첫 메시지서 “준법위, 역할 다해달라”

자율·능동 준법 문화의 정착과 산업재해 예방 강조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최근 삼성이 변화에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언론에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4세 경영 포기’와 82년간 유지해 오던 ‘무노조 경영’ 방침을 전면 폐기시켰다. 삼성은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그간 관례처럼 내려오던 형식의 틀을 깨뜨려버리고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삼성 준법위 출범부터 사과까지

지난 2019년 10월 25일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으로 촉발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를 중심으로 삼성그룹은 ‘법과 원칙의 준수’의 조직 문화가 되도록 준법경영 실천에 나서고 있다.

준법위는 외부 독립기구 형태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삼성그룹 전반의 준법체계를 감시할 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하면서 지난해 1월 출범하게 됐다. 구성은 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과 법조, 시민사회, 학계, 회사의 네 그룹에서 선정한 총 7명의 위원 등이다. 준법위에 감시를 받는 주요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이다.

준법위는 권고안을 내고 삼성에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해 반성·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 ▲무노조 경영 폐기 ▲시민사회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실행방안 등을 요구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5.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5.6

이를 수용한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국민들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린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법을 어기거나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며 4세 경영 포기를 못 박았다. 이는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는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이어 온 무노조 경영을 깨뜨린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노사 문제와 관련해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면서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삼성에서는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삼권을 확실히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아울러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고 건전한 노사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할 것을 밝혔다. 경영 승계 포기 역시 이병철 선대회장,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까지 계승해온 고리를 끊어낸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변화에도 지난 1월 선고공판에서 삼성 준법위에 대해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행동을 선제적으로 감시하는 활동까지 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준법위는 이와 관련해 “지난 1년 가까운 위원회 활동을 통해 보람과 성과가 없지 않았다”며 “회사 내부에서 최고경영진이 준법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달라졌고, 준법 문화가 서서히 바뀌는 것이 감지됐다”고 자체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위원회는 “하지만 위원회의 성취를 내세우기에는 아직 한참 모자란다는 것은 위원회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며 “위원회는 판결과 상관없이 제 할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법정 구속된 이 부회장도 “준법위원회의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며 “위원장과 위원들에 앞으로도 계속 본연의 역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에서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며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구속 전 이 부회장은 준법위 위원과 만나 준법위의 독립성과 지속적인 활동 보장을 약속했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23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23

◆11년 반도체 백혈병 분쟁 마침표… 산업재해 예방 나서

삼성은 준법위 출범 전에도 조금씩 과오를 청산해 왔다. 2018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두고 다투던 피해 근로자와 가족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11년간 끌어온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삼성 백혈병 분쟁은 지난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촉발됐다.

삼성 측은 “그동안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전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을 약속했다. 이어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안전을 강조하며 산업재해 예방을 강조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2021년 시무식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준법 문화의 정착과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사회적 요구에도 적극적으로 부응해 신뢰받는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하자”며 “특히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닌 필수적인 가치임을 인지해 안전 수칙 준수와 사고 예방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자”고 당부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6일 오후 서울 강남역사거리 CCTV 철탑 위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5.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6일 오후 서울 강남역사거리 CCTV 철탑 위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5.6

이외에도 삼성은 노조 와해와 관련해서도 사과했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 전·현직 임직원들이 잇따라 유죄선고를 받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입장문을 통해 재발 방지와 공식 사과를 했다. 삼성은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삼성은 서울 강남역 철탑 위에서 355일간 고공농성을 하던 삼성해고자 김용희씨에게 사과했다. 김씨는 1982년 창원공단 삼성항공(옛 테크윈)에서 일하던 중 경남지역 노동조합(노조)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입장문을 통해 “회사는 김용희씨에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한다”며 김씨를 명예복직 시켜주고 실질적 보상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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