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
구석본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내장된 길이 열린다
내가 달리면 길도 달리고
길이 걸으면 나도 걷는다
조작된 시간이 다할 때까지
걷다가 달리다가 걷다가 달리다가 다시 걷는다
시작도 혼자고 끝도 혼자다
외로움이 길이다.
[시평]
이 시는 현대인의 삶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단순한 운동기구인 러닝머신을 통해 반복적이고 기계화된 일상,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소외를 담아내고 있다. 기계의 버튼을 누름으로써 정해진 길이 열리는 상황은 우리가 사회적 구조 속에서 미리 설정된 궤도를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길은 개인의 선택보다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 삶처럼 느껴지며, 현대 사회의 기계적이고 규격화된 측면을 드러낸다.
2연은 러닝머신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과 기계의 동작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작용은 인간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아닌 기계적 동조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규칙과 제약,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의 제한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고독이라는 주제를 극적으로 부각한다. 러닝머신이라는 공간 속에서 오로지 혼자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느껴지는 개인적 소외와 단절을 상징한다.
이도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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