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영향력 확대 나선 러
‘과거 식민 열강과 다르다’ 강조
채무 탕감·식량 지원·군사 협력
바그너그룹 통한 軍 개입 논란
착취·정치적 종속 등 우려 커져
서방, 민주주의 위협으로 간주
글로벌 외교의 판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아프리카 개입이 지정학적 긴장, 경제 재편, 전략적 동맹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아프리카 동맹은 단순한 경제적 협력이 아니라, 모스크바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립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서방, 중국, 기타 세계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세계는 이를 주시하고 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선 속에서 말이다.
러시아의 아프리카 진출은 최근 몇 년간 가장 논란이 많은 국제적 흐름 중 하나다. 모스크바는 스스로를 군사·경제·외교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안적 파트너로 묘사하지만 서방 강대국들은 러시아가 지정학적 이득을 위해 아프리카를 조종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이중적 시각은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평가에서도 나타난다. 일부는 러시아를 신(新)식민주의 간섭에 맞서는 동맹으로 보지만 또 다른 이들은 동서 간의 세력 싸움에서 ‘졸(卒)’로 이용당할까 우려한다. 전 세계의 논쟁은 격화되고 있으며 아프리카는 사실상 새로운 냉전의 무대가 돼가고 있다.

◆전략적 부활: 러시아의 아프리카 재진출
역사적으로 소련은 아프리카의 반식민 해방운동에 군사적·이념적 지원을 제공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아프리카에서 사실상 철수했고 그 공백은 중국, 미국, 유럽이 빠르게 채웠다. 지난 10년간 러시아는 군사 협력, 자원 개발, 전략 외교를 통해 영향력 회복을 꾀해왔다.
냉전 시기 수십년간 아프리카는 소련과 미국이 영향력을 두고 싸운 ‘체스판’이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물러났고 그 자리는 중국, 미국, 유럽이 차지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서방 패권에 맞서는 세력으로 재정비하며 전략적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 소치에서, 202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는 이러한 푸틴의 야심을 보여준다. 당시 푸틴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 탕감, 부르키나파소·짐바브웨·소말리아·에리트레아로의 무상 곡물 지원, 군사 훈련 확대 등 두 배로 더 많은 것을 약속했다.
서방이 인권과 민주주의 조건을 내세우는 반면 러시아는 ‘식민주의 잔재 없는 파트너’로서 상호 존중과 불간섭을 내세운다.
2019년 정상회의에서 푸틴은 “러시아는 항상 아프리카의 반식민 투쟁을 지지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친구이자 파트너, 수호자가 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식민 열강들과 달리 러시아는 ‘과거 식민국’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러시아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아프리카 전략연구센터의 조셉 시글은 “러시아는 선의로 아프리카에 오는 것이 아니다. 허약한 거버넌스, 자원, 안보 공백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아프리카 주권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군사 확장: 영향력의 새로운 형태
러시아의 아프리카 개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군사 분야다. 러시아 민간 군사 기업인 바그너 그룹은 여러 국가에서 인권 유린, 정치 개입, 자원 착취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공식적인 지위가 없기 때문에 종종 ‘그림자 군대’로 묘사되는 이 그룹은 러시아 정부의 암묵적인 승인을 받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에서는 바그너가 프랑스군을 대체하면서 아프리카의 안보 동맹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CAR에서 바그너는 금과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받는 대가로 포스탱 아르샹제 투아데레 대통령을 보호하고 있다. 말리에서는 군부 정권이 프랑스를 내쫓고 바그너를 받아들였다.
서방 정부와 인권 단체들은 이를 비난한다. 분쟁 연구 단체인 센트리의 공동 설립자 존 프렌더가스트는 “러시아는 민간 군사 계약자를 이용해 영향력을 확장하면서도 공식 책임은 회피한다”며 “자원을 빼앗고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서방에 실망한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는 실용적인 대안으로 비친다. 사디오 카마라 말리 국방부 장관은 러시아의 개입에 대해 “러시아는 과거 식민 열강들과 달리 우리에게 훈계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권을 존중하고, 우리의 조건에 맞춰 돕는다”고 옹호했다.
미국, 유럽연합(EU), 프랑스는 러시아가 아프리카의 불안정, 군벌주의, 인권 침해를 조장한다고 비난하며 바그너와 관련된 활동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러한 혐의를 부인하며 필요한 곳에 안보 지원을 제공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 관계: 러시아의 무역 규모 확대
전 세계 중요 광물과 자원의 30%가 매장된 아프리카는 러시아의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의 중심이다. 원자력기업 로사톰, 석유회사 루코일, 알루미늄 회사 루살을 비롯한 러시아 기업들은 아프리카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2021년 기준 러시아-아프리카 교역은 200억 달러로 중국(2540억 달러)과 비교하면 여전히 소규모다. 그러나 러시아는 특히 에너지, 광물, 무기 거래를 중심으로 전략적 경제 확장을 꾀하고 있다.
무기 수출과 관련, 아프리카는 러시아 전체 무기 수출의 40%를 차지하며, 최대 무기 시장이다. 로사톰은 이집트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원전을 건설 중이며 루코일과 가스프롬은 석유·가스 탐사 중이다. 또한 러시아 기업들은 수단, 짐바브웨, CAR에서 금·다이아몬드·우라늄 채굴권을 확보했다. 더불어 러시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이용, 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 국가에 곡물을 공급하며 대체 식량 공급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폴 스트론스키 선임 연구원은 “중국이 인프라에 장기 투자하는 반면 러시아는 무기, 자원, 단기 이익에 집중한다”며 “이는 에너지·광물뿐 아니라 식량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아프리카 국가, 특히 서방의 제재나 외교적 고립에 직면한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리트레아는 미국과 EU의 제재를 받고 있으며 식량 지원, 군사 지원, 외교적 지원을 위해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아프리카 관계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
1. 미국과 유럽: 커져가는 위협
서방 강대국들은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불안정을 조장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러시아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EU와 미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군사적 관계를 심화하지 않도록 경고했다.
토니 블링컨 전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는 개발이나 평화를 위해 아프리카에 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정학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아프리카 민주주의와 안정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조종하고 선전을 퍼뜨리며 민주적 제도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2. 중국: 조용한 경쟁자
아프리카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러시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양국 모두 서방 패권에 반대하지만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두고 경쟁 중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달리 군사적 개입보다는 경제 투자, 인프라, 차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팀슨 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디렉터인 윤 선은 “중국은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서방의 관심을 분산시켜주는 존재로 보고 있지만 러시아의 공격적 전략에는 거리두기를 유지한다”고 분석했다.
3. 아프리카의 시각: 분열된 대륙
러시아의 개입에 대한 아프리카의 반응은 일률적이지 않다. 일부 지도자들은 러시아를 충실한 동맹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지도자들은 러시아를 의심스럽게 바라본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 특히 서방의 영향력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정부들은 러시아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말리, 부르키나파소, CAR 등 일부 국가에서는 러시아를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인식한다.
동시에 러시아도 결국 외세일 뿐이며, 자원 착취와 의존 관계를 만드는 존재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타보 음베키 전 남아공 대통령은 아프리카가 어느 한 강대국에 지나치게 의존해 냉전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편에서는 러시아의 군사·식량 지원은 환영하지만 자국 정부가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주권을 거래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도 러시아 이미지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러시아는 RT, 스푸트니크와 같은 국영 언론 매체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를 통해 서방의 시각에 반하는 친러시아 인식을 아프리카 전역에 퍼뜨리고 있다.
◆러시아는 친구인가, 새로운 식민 세력인가
서방은 러시아의 아프리카 진출을 지정학적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 아프리카 정부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같은 국가들이 러시아의 지원을 위해 프랑스 군대를 추방하면서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의 중심이 되고 있다. EU는 경제 원조와 안보 지원을 강화하여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응하려고 시도했지만, 장기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 있다.
인도, 터키, 걸프 국가들도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아프리카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파트너십은 몇 가지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글로벌 권력 투쟁의 전장이 되고 있는가?” “아프리카 국가는 더 나은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아니면 강대국들의 ‘졸’에 불과한가?” “러시아의 ‘주권 존중’과 ‘공정한 파트너십’ 약속은 진심인가, 자원 착취의 다른 형태인가?”
◆아프리카에서의 신냉전?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세계 정치에 기회를 만들고 동시에 위험도 초래한다. 이 흐름 속에서 아프리카가 주도권을 잡느냐, 아니면 또 다른 종속으로 이어지느냐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지정학적 운명의 다음 장은 모스크바, 워싱턴, 베이징에서 쓰여지고 있다.
비판자들은 러시아가 과거 식민 강국들과 다를 바 없이 군사력과 자원 착취로 통제를 유지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러시아가 서방 중심 질서에 대한 필요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세계 지정학을 재편하고 서구의 지배에 도전하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외교 전략을 재조정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 정부는 러시아의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환영하지만 다른 정부는 새로운 의존의 굴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미국, 유럽의 갈등 속에서 아프리카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스스로의 조건을 제시하고 주도권을 잡는다면 그 정치적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주체적이고 강력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