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트럼프발(發) 미국 우선주의 화살이 세계를 뒤엎고 있다. 그는 취임 몇 주 만에 새 관세 부과로 인한 무역 전쟁을 일으킨 데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꿨다. 크리스토퍼 라이언 마볼록 필리핀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철학과 부교수는 이 같은 인물이 세상에 등장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지도자가 된 데 대해 자유주의자들이 변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또한 마볼록 부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현대 정치의 적절한 상징이며, 기존 엘리트층의 위선이 그를 부상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크리스토퍼 라이언 마볼록 필리핀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철학과 부교수. ⓒ천지일보
크리스토퍼 라이언 마볼록 필리핀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철학과 부교수. ⓒ천지일보

취임 직후 ‘美 우선주의’ 폭주

푸틴 편들며 젤렌스키 압박

기후협약 탈퇴, 경제 불평등↑

유럽 안보 부담 증가, 신뢰 붕괴

머스크 부상은 과두정치 우려

기득권층 위선이 트럼프 띄워

취임 55일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깨어있는(woke) 문화’와의 전쟁을 벌이고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한 경멸을 선언하고 미국 관료제를 축소하겠다며 공무원 20만명을 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캐나다, 중국, 멕시코가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 또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대해 유엔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했다는 결의안에 반대했고,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를 다른 방향으로 바꿨다.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비참한 회담에서 트럼프는 푸틴의 대리인처럼 행동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따온 전략을 사용해 젤렌스키에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3500억 달러를 지원했으며 이를 회수하기 위해 미국이 광물 거래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회담 초반에는 분위기가 우호적이었고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젤렌스키를 맞이하는 것이 영광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곧 젤렌스키, 트럼프, 그리고 부통령 J.D. 밴스 간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젤렌스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자신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공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젤렌스키와 가진 회담은 외교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젤렌스키는 푸틴이 단순한 휴전 합의를 지킬 것이라고 신뢰하지 않으며 안전 보장을 원한다. 반면 트럼프는 젤렌스키가 푸틴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분쟁을 시작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영향은?

유럽 지도자들은 이제 미국의 방위와 지원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트럼프는 유럽 국가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기를 원한다. 그는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방어하는 데 1000억 달러만 지출했다고 불평하며, 이 돈은 반드시 회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원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가 러시아 영토 근처로 확장하려는 동진(東進) 계획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의 문제는 언제나 과거를 들춰보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비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 문제에서도 그는 과학을 부정하며 다시 한 번 미국을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시켰다. 트럼프는 탄소 배출 제한을 무시하고 미국의 제조업을 늘리고 싶어 한다. 트럼프는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어 하지만, 기후 위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세계가 트럼프가 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1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빨간색 모델S 테슬라 차량을 시승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국내 상황과 신흥 권력층

한편 국내에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워싱턴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 됐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미국이 점점 과두정(寡頭政), 즉 소수의 부유층이 지배하는 체제로 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급격히 증가한 반면 평범한 미국인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 기술 억만장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상위 1%가 미국 경제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트럼프는 개발도상국의 기아 및 질병 퇴치에 필수적인 국제개발처(USAID)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이 모든 것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기치 아래 이뤄졌다.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하게 세계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살펴보자. 오랫동안 자유주의자들은 세계를 변화시킬 기회를 가졌지만 그들 역시 실패했다. 빅테크(Big Tech, 대형 기술 기업)의 부상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머스크 역시 노동자를 이윤보다 후순위로 두는 자본 중심 환경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트럼프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바이든 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지원하며 러시아와의 전쟁을 사실상 나토 대 러시아, 푸틴 대 서방 세계의 대결로 만들었다. 바이든은 가자지구 전쟁에서도 책임이 있다. 그는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스라엘에 폭탄과 무기를 공급했다.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몰아붙인 것은 잘못이지만, 세계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트럼프는 젤렌스키가 언제든지 다시 와서 평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푸틴의 편을 들고 있다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평화가 회복돼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물론 트럼프는 현대 세계의 구세주가 될 수 없으며 그로 보이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는 현실주의자일 뿐이다. 그의 비판자들은 그를 ‘혼란을 조장하는 지도자’라고 부르지만, 보수주의자들은 그가 정부 지출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상류층 우대 정책이 혼란 초래

태평양 지역에서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대만, 필리핀 및 기타 동맹국들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이는 미국의 예외주의에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보내는 메시지는 사실 다르다. 일본이 중국의 침략에 맞서 재무장에 나서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필리핀의 정치 전문가들은 중국의 침략에 대해 계속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외교적 항의는 옳은 대응이지만 우리는 미국의 대리전(代理戰)으로 인해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결국 트럼프는 현대 정치의 적절한 상징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트럼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 상류층을 우대하는 정책들이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기아는 증가하고 있으며 테러리즘도 과거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는 그가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한 메시아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들만의 기회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변화를 외치는 정치’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변화의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조차 문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위선을 인정하지 않는 한 세계는 트럼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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