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풍 타고 번진 초대형 산불에 60~80대 다수 희생
요양시설 차량 폭발·이웃 구하려다 숨진 이장 부부 등 참극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경북 북동부 지역을 덮친 초대형 산불로 고령자들의 인명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산불은 지난 22일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등지에서 시작돼 강풍을 타고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빠르게 확산됐다.
26일 산림·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오전 10시 기준 사망자는 총 22명, 부상자는 19명으로 집계됐다.
숨진 이들 대부분은 60대 이상 고령자로, 거동이 불편해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영덕군 매정리에서는 80대 요양시설 입소자 3명이 직원들과 차량으로 대피하던 중 차량이 폭발하면서 모두 숨졌다. 해당 차량에는 6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마을에서는 80대 부부가 집 앞 내리막길에서 변을 당했다. 행정당국은 이들이 불길에 갇혀 도망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영양 석보면에서는 한 마을 이장이 60대 처남댁을 구하기 위해 차에 태운 뒤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가, 아내와 함께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주민들은 이장이 다른 주민도 함께 구조하려 했다고 전했다.
청송 파천면과 진보면에서는 70~80대 고령자들이 숨졌고, 안동 임하면에서도 70대 여성이 산불 연기에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앞 마당에서 쓰러져 있었고, 가족이 대피를 위해 집을 찾았다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전국에서 약 1만 7400ha의 산림이 불에 탔고, 2만 7000여 명이 대피했다. 이 가운데 경북 의성과 안동에서만 2만여명이 대피했으며, 현재까지 2만 6000여명이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규모도 크다. 주택과 창고, 사찰, 차량, 문화재 등 건물 209개소가 불에 탔고, 응급구호세트와 구호급식, 생필품 등이 제공됐으며 심리상담도 1000건 이상 진행 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권한대행은 이날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역대 최악의 산불에 모든 가용 자원을 총동원 중이지만,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는 “산불 진화가 우선이며, 이후 철저한 점검을 통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불법 소각, 담배꽁초 무단 투기, 입산 시 화기 소지 등에 대해 강력한 단속에 나설 방침이다. 관계 당국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신속한 진화와 더불어 대피 지시와 현장 통제, 예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참사는 고령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산불 대응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민 스스로 대피가 어려운 노인 가구에 대한 선제적 구조 시스템 마련과 이장·자원봉사자 의존 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