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 쇼핑.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황해연 기자]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고물가 상황 속에 ‘초저가’ 전략을 펼치면서 국내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정부가 해외직구 금지 정책을 발표했다가 철회하면서 발생한 이커머스 생태계의 혼란은 여전히 지속된 상황이다. 제대로 된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제2, 3의 혼란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중국의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격은 그야말로 ‘저렴’하다. 통상 1만원 이상의 가격대를 가진 제품도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몇천원대 수준에 판매되고 있다.

이용자들은 가격에 ‘대만족’하지만 품질 등에는 불만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달 전국 만 18세 이상 소비자 가운데 최근 1년 이내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500명을 온라인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상품 가격 만족 비율은 80.8%에 달한다.

그러나 품질·안전 등 나머지 항목은 20~30%대에 그친다. 실제 판매 제품을 보면 발암물질·유해물질 등이 계속해서 검출되거나 판매자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등 법규 위반 행태가 여전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16일 어린이 제품 34종과 전기·생활용품 34종, 가습기용 소독·보존제 등 생활 화학제품 12개 품목 등 총 80개 품목에 대해 국가통합안전인증(KC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과 함께 쉽게 제품을 구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사용에 유익함을 느끼는 국내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는 사흘 만에 해당 규제를 철회했다. 이후에도 소비자들의 비난이 사그라지지 않자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사과에 나섰다.

정부가 급히 사태 진화에 나서긴 했지만 여파는 여전하다. 지난 주말인 25일에는 서울 도심에서는 직구규제반대소비자회(소비자회) 주최로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소비자회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정책을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면서 “정부의 해명대로라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도, 해당 정책을 집행하는 일선 기관인 관세청도 모르는 사이에 정책이 결정되고 발표되는 심각한 공직기강 문란이 자행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정부가 혼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한편 직구 제한을 비롯해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규제를 향후 재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할 것 등을 촉구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제대로 된 기준이 없어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중국 플랫폼의 국내 시장 진출에 따른 유통·제조업의 위기’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C-커머스 관련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쏟아냈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인 이동일 세종대 교수는 “KC 인증으로 (중국 플랫폼에)장벽을 치려했다가 소비자들의 저항을 만났다”며 “정부가 ‘우리 시장은 우리끼리 조율하면 된다’는 식의 닫힌 생태계로 이 시장을 바라본 게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우리 유통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체 제조·유통 시스템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정당한 규범적 합의는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진용 건국대 교수는 “정부는 C-커머스와 관련해 중소기업 유통 생태계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정책 철학을 정해야 한다”며 “철학 없이 그때 그때 대응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기준이다. 정부는 더 이상 속까지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미숙한 대책을 내놔서는 안 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해외직구 상품에 대한 안전성을 보장하면서도 국내 유통 산업을 깨트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기준을 세우고 보다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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