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4년 경제정책방향 합동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0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4년 경제정책방향 합동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04.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이 길이 아닌가벼.

이는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 방향이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고 멋쩍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르던 군중을 벙 찌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책을 내놓고 추진하는 정부가 해선 안 되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말에는 책임감이 담겨 있다. 잘못을 인정해야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엉터리 통계’로 도마 위에 오른 국토교통부가 보여줘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지난달 30일 국토부는 올해 1월 발표했던 ‘2023년 주택 통계’를 수정해야 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인허가·착공·입주 등 공급실적에서 무려 19만 가구나 누락됐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발표했던 주택 인허가 실적이 기존 38만 9천 가구에서 42만 9천 가구로, 착공 실적이 20만 9천 가구에서 24만 2천 가구로, 준공 실적이 31만 6천 가구에서 43만 6천 가구로 각각 늘어났다.

특히 준공 12만 가구가 누락됐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입주 물량과 직결되는 준공은 지난해 23.5% 줄었다고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5.4%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정부는 틀린 통계를 바탕으로 공급정책을 짰다. 공공주택과 빌라 등 비(非)아파트 공급 촉진을 위한 ‘9.26 대책’ 안전진단 등 재건축 규제를 확 풀어 민간 공급 확대를 꾀하는 ‘1.10 대책’을 잇달아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인구 36만명의 강원도 원주에 약 17만 가구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택 19만 가구는 지역의 도시 하나를 지을 정도의 규모다. 

19만 가구나 빼먹고 정정 발표가 아닌 보도자료 배포로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건 정부가 취하고 있는 태도다.

김헌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통계 오류를 감안하더라도 인허가·착공 등이 예년보다 줄어든 것은 변화가 없다”며 “정책적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어차피 공급을 늘린다는 기조는 정해져 있고, 19만 가구가 통계에서 빠졌지만 무슨 상관이냐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적어도 공급 정도나 방향성에 있어 문제가 있는지 재검토하겠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여기에 “통계를 집계하는 건 한국부동산원”이라고 답하던 국토부 관료들의 답변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국토부의 수장인 박상우 장관의 답변은 더 가관이다. 박 장관은 최근 언론 간담회를 통해 “부동산원에서 어떻게 그 자료를 만들어 냈는지 저는 알지 못 한다”고 답했다. 

국토부 장관이 통계에 왜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니 그 누가 알겠는가. 적어도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에 쏙 들진 않았으리라.

정부는 서울의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부동산 규제를 대거 완화했고, 재건축 관련 규제도 안전진단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풀어버렸다. 부동산 세수를 줄여주는 각종 정책은 말할 것도 없다.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부가 규제를 푸는데 목을 매는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재건축을 많이 하는 건 누구를 위한 일인가.

지난해 국토부 수장이었던, 금배지를 달겠다며 국회 문턱을 넘으려 했던 자칭 ‘대장동 일타 강사’ 원희룡 전 장관에게 묻고 싶다. 건설 노조를 ‘건폭 노조’ ‘이권 카르텔’로 몰고,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 때 건설사들에 ‘최고 수준의 처벌’을 외치느라 공급 19만 가구를 빼먹은 것인가.

국민 절반은 아파트에 사는 우리나라에서 공급 19만 가구를 빼먹고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공급정책을 수립·추진하는 것과 건폭노조와 설전을 펼치는 것 중 어떤 게 더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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