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이혼·동거 ‘비정상적 가족’ 규정 버리고 포용 메시지
언론 “가톨릭교회의 혁명적인 변화”… 프란치스코 교황 영향
보수적 주교들 크게 반발… 주최 측 “초안일 뿐, 향후 수정”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동성애와 이혼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해 온 가톨릭교회가 처음으로 포용 입장을 시사해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5일(현지시각)부터 19일까지 2주간 열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가 ‘가정사목과 복음화’를 주제로 바티칸에서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3일 12쪽 분량의 예비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에는 ‘가톨릭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부부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해야 하며, 이들의 아이들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보고서는 19일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 전 중간보고서다.
◆오늘날 가정 현실 수용 ‘열린 입장’
보고서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 교리에는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동성애자에게도 기독교 공동체에 제공하는 은사와 자질이 있으며 이들의 결합은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도 서로 희생을 통한 미덕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이혼과 재혼을 이유로 신도를 차별하지 말라”는 내용과 “세속적 결혼은 가톨릭 신자들의 동거가 지니는 긍정적 측면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피임에 대해서도 ‘자연적 방법’을 이용하는 조건을 달아 허용하는 입장을 밝혔다.
보고서를 발표한 헝가리 에스테르곰-부다페스트 대교구장 피터 에르도 추기경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지 알며, 하느님을 향한, 그리고 교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하고 싶은 그들의 원의를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오늘날 가정의 현실에 가톨릭교회가 새롭게 열린 자세와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서,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교황청 공식 문서에서 나타난 가장 획기적인 전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986년 동성애에 대해 ‘본질적으로 윤리적 악’이라 규정했고, 2003년에는 동성애 커플 입양 허용은 ‘심각하게 비도덕적’이며,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이런 언명이 빠져있는 대신 포용과 환대라는 용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회의 특별보좌관 브루노 포르테 대주교는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용인하자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존엄을 존중하자는 취지”라면서 “성적 성향과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가톨릭교회가 기존의 교리를 변경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동성애와 이혼, 동거, 피임 등 엄격히 금해온 사안에 폭넓게 문을 열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이혼, 동성애, 피임과 같은 중대 사안들에 대한 이번 보고서의 어조는 거의 혁명적 수용”이라고 평가했다.
NYT는 “가톨릭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따라갈 수 있다는 첫 신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특별한 가정에 대해 비난보다는 이해와 개방과 자비를 촉구했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게이’라는 단어보다 ‘동성애자’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보수 세력 반발 “전체 의견 아냐”
그러나 가톨릭 내 보수 세력은 전통에 대한 배신이자 이단적 사고라면서 보고서 내용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NYT는 이번 문서가 200여 명의 주교가 모인 자리에서 낭독되자 41명의 주교들이 즉각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분쟁의 조짐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수천 년간 진리처럼 여겼던 신앙의 근본을 허무는 위험한 입장 변화라고 주장했다.
보수파 대표격인 레이먼드 레오 버크 추기경은 “신앙의 진리에서 벗어난 발언”이라면서 반대했다. 스타니스와브 가데키 폴란드 추기경은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아공의 윌프리드 폭스 내피어 추기경과 레이먼드 버크 미국 추기경도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며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바티칸 최고법원 원장인 버크 추기경은 바티칸 공보부가 예비보고서의 논조에 반대하는 ‘주교들의 고정적인 숫자’를 반영치 않은 왜곡된 정보를 풀었다고 비난했다.
시노드 주최 측은 일부 주교들의 반발이 거세자 보고서는 향후 수정될 단순한 실무자료이며 언론에 의해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주교들은 일단 보고서를 긍정평가하고 있으나 최종 버전의 균형을 잡기 위해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동성애와 동거에 대해 교회에서 이런 경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의 대주교인 티모시 돌란 추기경은 “보고서는 단순히 초안일 뿐이며 최종 결론까지는 논의할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문서는 언어권별 그룹 토의를 거쳐 6명의 최종 문서 작성 교부들의 의견을 모아 최종본을 완성한다. 6명의 교부 중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가 포함됐다. 19일 최종 보고서로 만들어진 뒤 내년에도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논의를 거칠 예정이어서 그 파장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시노드 임시총회에는 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모두 253명이 참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우일 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권경수 세계여성연합회 상임이사가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