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상 탓문화청산운동본부 대표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굳어 갈 무렵,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敵)을 단 한 대라도 때릴 능력이 없는 나라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를 아무런 이익 없이 도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국제사회는 ‘스스로 돕는 나라’만 돕는 살벌한 세계이며, 힘없고 자존심마저 없는 못난 민족은 세계인의 멸시와 조롱거리가 될 뿐, 지구촌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냉엄한 세계사가 말없이 웅변해 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상황을 보면 구한 말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상황과 흡사하다. 군사력을 계속 키워온 일본과 중국은 인구와 경제력, 그에 더해 문화적 힘까지 바탕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고 있다.

더군다나 고모부까지 잔인하게 처형해 버리는 극악무도한 북한 정권은 연일 극단적인 전쟁위협을 해오고 있으며, 여기에 미국까지 얽히고설킨 동북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힘만으로는 대놓고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게 솔직한 현실(?)이 아닐까. 이런 상황이면 나라 안부터 통합해 국민적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할 텐데도 정치는 국민을 더욱 분열시키고 오히려 대한민국을 해체되는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

일부 국민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외세에 대해선 왜 남의 나라 일처럼 애써 외면하면서 국내 정치 이슈에 대해선 입에 거품을 물고 핏대를 세우는 걸까. 대한민국의 미래야 어떻게 되든 오직 진영논리에만 사로잡혀 정권 잡는 데만 몰두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민초의 답답한 가슴에는 당파 싸움과 국론 분열로 일본에게 두 번이나 당했던 지난 과거가 어른거리는 요즘이다.

‘탓 문화 청산’으로 돌파구 찾아야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010년 우리나라 사회갈등 지수는 0.72로, 종교적 갈등이 심한 터키에 이어 OECD 두 번째로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2009년 4위였으니 한국사회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갈등의 관리와 해결점을 찾는 일은 정권을 초월한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외부로부터 위기가 닥쳤을 때는 나라의 존립이 걸린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은 패배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저마다 방향키를 잃고 난파선처럼 표류하고 있다. 극도의 개인주의 앞에서 공동체의식은 무너지고, 끝도 한도 없는 ‘네 탓’ 공방 속에서 가치관은 전도돼 가고 있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다. 옳고 그름, 밝음과 어둠이 불분명한 회색의 시대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처절한 자기 변신을 통해 우리 모두 탓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내가 살고 우리가 함께 사는 길이다.

지금 새 정부 앞에는 수많은 과제와 막중한 책무가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풀어야 할 많은 과제 중에서도 최고의 난제는 역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골을 메우고 대통합을 이룩하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나 법 개정, 탕평인사 같은 정부 차원의 탑다운(Top-Down) 방식도 꼭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전 국민을 100% 만족시키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법령과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는 결국 국민일 수밖에 없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과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만족스러운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선결과제인 국민 대통합을 위해 국민 개개인의 의식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며, 상향식(Bottom-Up) 정신문화 영역의 혁명적 개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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