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중국 진(晉)나라의 국세가 강해지자 정(鄭)나라에서 값비싼 선물과 가희들을 화친의 선물로 보내왔다. 진 도공이 패업을 이루는 데 공이 큰 위강에게 절반을 하사하자 위강이 말했다.

“무릇 평안히 지낼 때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한다. 충분한 준비가 있으면 그제야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이다.”

끝내 사양하며 받지 않은 그는 도공이 제후들 앞에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를 잃지 말 것을 간(諫)했다. 도공은 위강의 남다른 식견에 머리를 끄덕이며 미녀들을 모두 정나라로 돌려보냈다.이후 진나라는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춘추좌씨전에 있는 얘기다.

서경(書經)은 상고시대 정치의 기록이다. 부열이라는 재상이 은(殷)나라 고종에게 올린 글에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리 미리 대비하면 환란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야 할 귀한 말이다. 우리가 겪은 임진왜란 병자호란부터 가까이는 일제침략과 6·25 한국전쟁의 참화를 생각하면 늘 깨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정반대 편에는 늑대소년 일화도 있다. 늑대가 실제로 나타났을 때 아무도 양치기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이솝 우화다. 둘 다 일리 있는 얘기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지난달 17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에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야 반응이 엇갈렸다. 장관의 말은 3월 한·미 키리졸브 훈련을 앞두고 예년에도 북한의 위협이 고조됐던 점을 감안한 것으로 여당은 풀이했다. 북한의 장성택 처형 이후 위험하고 엄중한 상황에서 군의 경각심을 높이고 대비 태세 강화를 지시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 쪽은 김 장관의 의도를 의심했다. 국방부 장관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불안을 조성하거나 북한 정세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고 하는 의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도발 가능성과 경계 태세를 늦추지 말라는 언급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자극이 될 수도 있으니 호들갑떨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느 국가나 ‘매파’ ‘주전론자’와 ‘비둘기파’ ‘주화파’가 있다. 2010년 11월 임명된 김 장관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 이후 떨어진 군의 사기를 북돋우고 북한의 도발에 효율적으로 대비하면서 강군(强軍)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군(軍)을 군답게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그러나 대립과 갈등에 바탕한 경직된 안보 정책만이 외교나 남북관계의 모두는 아니다.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 개선 방침을 신년사 등을 통해 전해왔지만 우리 정부는 진정성이 있다면 북한이 먼저 말과 일치된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에 변함이 없다.

김 장관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문제는 국방부 장관의 언급이 마치 범정부적 정책이나 목소리인 듯 커지게 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선 경제적으로 영향이 크다. 소비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다. 도발 가능성 언급은 벌써 여러 차례다. 개성공단 사태가 불거졌을 때도 먼저 김 장관이 나서 인질구출 작전을 거론했다. 국방장관으로서 못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부 외교부 등 다른 부처의 말은 쏙 들어가 버리고 김 장관 말만 크게 부각됐다. 인질 구축작전은 군이 내부적으로 치밀하고도 침착하게 행동으로 준비할 상황이지 먼저 말을 앞세울 일은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때도 주가는 뚝 떨어지고 외국인들의 투자도 줄어들었다. 경제라는 기관차를 끌고 가는 것은 기업들이다. 기업이 실패하면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도, 창조 경제도, 성장도, 고용도, 복지도 언감생심 위험에 빠진다.

북한에는 소중한 지하자원이 있다. 이에 관한 거래는 지금껏 중국이 독차지하고 있다. 북한의 인력도 값싸고 우수하다. 하지만 겨우 개성공단 일부 업체에서만 활용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가 발목을 잡고 연평도 천안함 사건에 떼밀려 납북협력은 산소호흡기에 기대어 연명하는 상태다. 박근혜정부 출범 2년차이지만 남북한 간에는 상호불신과 갈등만 계속이고 ‘한반도프로세스’는 아직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동북아안보구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얼마나 거센가. 한반도를 둘러싼 풍향계가 예사로운가. 미·중·일·러의 각축이 우리에게 얼마나 지혜로운 전략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가. 우리가 여기서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5·24조치 해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각에서는 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또 쌀을 퍼주려고 하느냐”고만 한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의 재발방지 보장은 정부의 당연한 요구였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문서로 내놓으라는 이명박 정부의 경직된 요구가 시발점이었다. 그 후 남북관계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이어 꽁꽁 얼어붙은 채 해빙되지 않고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와 4강 외교에서 기대만큼 한국의 주도권이 행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우리가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유연하고 지혜로운 남북화해협력 정책이 나와야 한다. 통일이라는 우리만의 보물단지를 멋지게 관리해내는 거시적인 통일 외교정책이 아쉽다. 박근혜 대통령도 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말했지 않았는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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