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속으로

박정만(1946~1988)

너의 분홍빛 젖가슴 속으로
철저하게 무너져간 홀엄씨 마음,
사실은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임신한 네 아랫배도 볼 수 없었어.

입덧은 크게 산울림으로 밀어닥치고

[시평]
가난한 젊은 시절, 달동네 남의 집 방 한 칸을 얻어 살면서, 수도마저도 없어, 동네 공동수도에서 힘들게 아침저녁 물을 길어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 젊은 새댁. 첫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은 잠시, 힘겨워하는 아내의 아랫배,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입덧을 하는 아내에게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주지도 못하던, 그래서 더욱 안쓰러워지는 젊은 날의 그 가난.
불러오는 배를 안고, 살아가기 위하여 일을 해야 하는 아내의 그 박같이 부른 배. 입덧을 다만 입덧으로 참아내고 지내야 하는 현실. 젊은 날은 ‘가난도 힘’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떠밀어도, 떠밀어도 막막히 밀어닥치는 크나큰 산울림 마냥, 어쩔 수 없는 아픔으로 밀어닥치고 있구나.
가난 속에서 가난과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가난을 끌어안고 다만 죽어간 한 사람의 시인. 철저히 무너져간 홀엄씨의 마음, 오늘도 그 이름, 사람들 남몰래 눈물만 짓게 하누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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