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 노동조합이 7일 서울을 찾아 정부의 대규모 인원감축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8
한국토지주택공사 노동조합이 7일 서울을 찾아 정부의 대규모 인원감축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8

정부, 분리·대규모감축 검토

“득보다 실 多, 공공성 훼손”

“공분해소보다 주거복지봐야”

 

여야의원·전문가 대다수 반대

투기의혹 제기한 참여연대도

“개편 왜 하는지 명확히 해야”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국토교통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원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보고한 것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LH의 조직개편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력 감축안이 기재부까지 전달되면서 기존에 ‘회사를 모-자 구조로 쪼개면 국민 주거복지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 우려에 또다른 우려가 더해지는 모양새다.

7일 정부 관계자와 LH 노조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달 31일 열린 공운위에서 LH 기능·인력조정방안을 보고했다.

이 방안에는 LH 정원을 1064명 감축하면서 ▲시설물 성능인증·안전영향평가 등 5개 기능 폐지 ▲공공택지 입지조사·그린리모델링 등 9개 기능 타기관 이관 ▲국유재산재생·연구개발·지역개발 등 기능을 축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축안에 대해 LH의 기능과 소요인력을 가장 잘 아는 국토부가 아닌 기재부가 그 열쇠를 쥐고 있어, 인력-업무량 부조화에 조직개편까지 맞물리면서 국민 주거안정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부정평가가 나오고 있다.

LH가 현재 수행 중인 기능의 축소·이관·폐지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계획은 담겨 있지 않고, 대상 사업과 감축 인원에 대한 부분만 제시했다는 이유에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매입임대 주택공급이 최근 4만호에 달하는데, 주거복지를 강화하고 2.4대책은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하면서 인력을 20% 감축하는 것은 모순이며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20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 학계 교수,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LH 조직개편안 2차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국토교통부 유튜브) ⓒ천지일보 2021.8.22
20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 학계 교수,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LH 조직개편안 2차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국토교통부 유튜브) ⓒ천지일보 2021.8.22

곳곳에서는 LH의 투기재발 방지장치 구축, 갑질·퇴직자 전관예우 등 악습 근절 추진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LH 조직이 분리되고 인력이 무더기로 감축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 주택공급 확대정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LH 노동조합은 인원조정 부분에 대해 “관리범위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3급을 감축하고, 그것도 모자라 입사 3~5년 차에 해당하는 4·5급을 업무량 증가와 신규채용을 고려해 감축한다고 한다. 정원감축이 투기근절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최근 LH 조직개편안 2차 공청회에서 국토부 토지정책관이 “신규채용 규모는 유지하려고 한다. 적어도 100명 이상 정도는 계속 뽑아나가겠다”고 말한 점에 대해서도 정원감축 기조와 배치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정책이라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기재부가 애초 인력감축을 정밀진단과 명예퇴직, 희망퇴직을 활용해 단계적·연차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가, 갑자기 일괄 감축으로 말을 바꾼 것은 졸속방안임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1만명의 직원 중 투기의혹으로 구속된 직원은 단 0.05%에 불과한데 인력감축이 해결책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며 “다른 기관도 투기 관련자가 있다면 인력을 감축하고 조직을 2개로 쪼갤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투기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이강훈 참여연대 변호사조차도 “정부 개편안은 LH 조직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할 방안이 전혀 아니다”라며 “정부가 왜 LH 조직을 개편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5일 ‘국민을 위한 LH의 혁신방안 모색’을 주제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2차 건축도시단체 연합 온라인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대한건축학회 건축TV 유튜브) ⓒ천지일보 2021.8.6
5일 ‘국민을 위한 LH의 혁신방안 모색’을 주제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2차 건축도시단체 연합 온라인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대한건축학회 건축TV 유튜브) ⓒ천지일보 2021.8.6

게다가 LH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 인력감축까지 강행되면 인력 부족으로 주택공급 확대정책이 제때 추진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LH 관계자는 “내부 분위기가 너무 침울하다. 이번 사태로 퇴직자와 휴직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강제 인원감축 이야기가 나와 투기와 전혀 관계없이 묵묵히 일하던 직원들마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근로의욕을 상실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이 차질 없이 추진될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현재 LH는 전세대책에 따른 공공주택 공급과 2.4대책의 공공주도형 재개발 사업,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등 정부의 굵직한 부동산 정책 대부분을 도맡아 수행하고 있다. 사업비도 지난해 대비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도권의 한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민적 분노에 매몰돼 충분한 검토 없이 단시간에 기능조정 사업을 선정하고 인력감축 규모를 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통제를 강화해 투기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되 주거복지, 도심주택공급 등 정책사업 일손은 늘려 LH 본연의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토록 지원하는 것이 개편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회에서 열린 지난 2차 공청회에 참석한 여·야 의원, 교수, 시민단체 등 대다수도 정부의 LH개편안이 ‘조직 슬림화’에 중점을 두고 추진되면 국민 주거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인 바 있다. 10차 공운위에 참석한 민간위원들조차도 주거복지와 2.4대책 등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LH의 역할을 인정하고, 성급한 인력감축과 조직개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LH는 올해 초 상반기에만 신입사원 500여명, 청년인턴 700명 등 총 120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상반기에 서류·필기 면접전형을 마치고 임용 준비에 한창이어야 하지만 땅 투기 의혹에 휩싸이면서 모든 채용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진주시에 있는 경남혁신도시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한 11개의 공공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LH 진주 본사를 중심으로 한 경남혁신도시 전경. ⓒ천지일보 2021.6.20
진주시에 있는 경남혁신도시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한 11개의 공공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LH 진주 본사를 중심으로 한 경남혁신도시 전경. ⓒ천지일보 202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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