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코로나19 여신(대출) 상담창구의 모습 (출처: 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코로나19 여신(대출) 상담창구의 모습 (출처: 뉴시스)

불완전판매 관행 개선 목적 발의

시행 직후, 적금 가입만 1시간

위법계약해지권 부당 이용 우려도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지난 3월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이후 금융상품 판매 전반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라임’ ‘옵티머스’ 등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낳은 사모펀드 사태는 금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발의된 금소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 해당 법안으로 소비자 불편이 더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의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금융상품 판매 현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소법이 뭐길래 난리야?”


금소법은 자본시장법 등 개별 금융업법에서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를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2011년에 발의돼 9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금소법의 6대 원칙은 ▲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규제 등이다.

금소법에 적용된 6대 원칙에 따라 판매자는 소비자의 위험성향에 맞지 않는 고위험상품을 권유할 수 없으며, 소비자의 상황에 맞지 않는 상품에 가입할 시 이를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또 계약과정에서 상품과 관련한 중요 사항을 설명해야 하며, 투자자가 가입 의사가 없는 상품에 대한 계약 체결을 계속 권유해서는 안된다.

적용대상은 은행, 보험사, 금융투자사, 여신전문회사, 저축은행, 신협, P2P업체, 대형대부업체 등이다. 다만 농협과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등은 금소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법상 금융위원회가 이들의 영업행위를 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다.

금소법 시행에 따라 금융소비자의 권리는 강화된 반면 금융사들의 부담과 책임이 무거워졌다. 금소법의 6대 판매규제 원칙을 지키지 못한 금융사에는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되고 판매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에 따라 금융사 판매 직원의 적극적 권유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또 보험 상품 등 일부 금융상품에 적용하던 청약 철회권이 전상품으로 확대 적용된다. 금융사가 위법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라도 소비자의 마음이 바뀌면 일정 기간 안에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

◆고통받는 은행·소비자… 뒷북치는 금융당국


금융소비자의 권리가 강화됐음에도 금소법이 입방아에 주기적으로 오르는 이유는 구제 적용범위가 광범위함에도 세부규정이 모호한 탓이다. 또 금융당국이 관련 감독규정과 시행세칙을 법 시행 직전에서야 마련하면서 금융권 내에서 ‘뒷북’ ‘주먹구구식 운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금소법 시행 당일인 지난 3월 25일에는 판매 창구에서 금소법 시행 원칙에 따라 적금 등 금융상품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느라 단순 적금 가입에만 30분에서 1시간까지 소요되는 등 은행원과 고객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충분하게 법 시행세칙을 고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금융당국이 법 시행 직전에서야 세부규정을 고지하면서 현장에서 혼선이 야기됐다”며 “정부가 주먹구구식 운영을 한다는 것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이번에 신설된 청약철회권에 따르면 소비자의 단순 변심으로도 금융상품 환불이 가능해졌을뿐더러, 금융상품 소개에서 일부 누락됐을 경우 위법계약해지권을 이용해 금소법을 위반했다고 트집잡힐 수 있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금소법과 세부규정 모두 금융당국에서 탁상공론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관계자의 말대로 금소법의 시행으로 금융회사들은 금융상품 판매에 대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일부 조항을 어길 경우 계약으로 얻은 수입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상품 계약과 관련해 판매사가 소비자에게 설명하지 않거나 부당권유를 하면 과징금을 물게 되는데, 설명의무 위반과 관련한 사항을 금융회사가 책임이 없다는 것을 판매사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로 인해 시행 첫날 혼선을 빚게 된 것이다. 금소법 시행 이후 금융사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대비해 모든 상담 내역에 대한 녹음을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손해배상책임과 징벌적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 설명서에 기재된 내용을 상담 직원이 모두 읽느라 소요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났다.

금소법에 따라 금융소비자가 위험성향평가에 소요하는 시간도 생겼다. 위험성향을 넘어서는 위험도의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에 소비자 투자성향분석 절차가 길어진 것이다.

금소법상 적합성의 원칙과 적정성의 원칙에 따라 소비자의 위험성향에 부적합한 특정 펀드를 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입은 가능한 경우도 현장에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당국은 위험성향을 넘는 특정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금융사는 혹시라도 나타날 수 있는 소비자 분쟁에 대비해 해당 사항을 보수적으로 적용해 위험성향을 넘는 금융상품 판매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이같이 금소법에 대한 잡음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금융위는 지난달 15일 금소법 시행 상황반 제1차 회의를 열었다. 금소법 시행상황반은 금융위 사무처장을 반장으로 두고 ‘애로사항 해소분과’ ‘가이드라인분과’ ‘모니터링·교육분과’ 등 3개 분과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업계와 소통을 강화, 금소법 조기 안착을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금융당국은 소비자가 오프라인에서 서비스를 받는 시간 소요를 줄이기 위해 과거 거래해오던 소비자가 신규 거래를 할 때 기존에 제공받은 정보와 적합성 판단 기준에 큰 변동이 없다면 평가를 간소화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설명과 관련해서도 구두방식 외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활용을 허가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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