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고층 건물 건립 문제를 두고 정부 부처와 서울시가 연일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숨이 막히게 된다”며 서울시 결정을 비판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가유산청장도 “모든 수단을 강구해 막겠다”고 나섰다.
물론 문화재 보호를 담당하는 부처들의 입장은 이해할 만하다. 종묘는 단순한 역사적 건축물이 아니라 서울 도심의 정체성과 연결된 중요한 유산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상충하는 가치가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종묘에 가까운 세운상가 일대는 20년 넘게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58년 된 건물이 흉물처럼 방치돼 왔다.
서울시는 재개발 계획을 통해 세운상가를 허물고 최고 142m의 고층 건물을 세우되, 종묘에서 남산까지 녹지 축을 만들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최근 대법원은 문화유산 보호구역 밖 공사까지 제한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세운상가 재개발과 더불어 문화재 주변 도심 재개발도 탄력받을 전망이다.
문제는 일부 정부 부처의 대응이 과열되는 모습이다. 이번 사안에 불필요하게 정치적 논리가 개입하면서 합리적 논의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김 총리와 일부 장관들이 현행 재개발 계획을 비판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것은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의식한 행보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개발이 종묘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 근거를 잃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정비 사업은 오히려 종묘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며 김 총리와의 토론을 제안했다. 정부가 순전히 문화재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면 토론과 공청회 참여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합리적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면 문화재 보호와 도시 발전, 시민 재산권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동시에 지킬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균형이다. 문화재 보호와 도시 재정비, 시민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 순간, 도시는 정쟁의 장이 되고 합리적 결론은 실종된다. 세운상가 재개발은 단순히 한 구역의 건축 문제가 아니라, 서울 도시 정책과 문화유산 관리의 선례를 만드는 문제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치적 목적을 배제하고,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합리적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