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 문제를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지만 7개월째 진전이 없다.
노동계는 연내 입법을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기업 부담과 청년 고용 위축을 우려하며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정년연장은 2033년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에 맞춘 조치지만 시행 과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지 못하면 기대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정년연장은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고용 총량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정년이 길어지면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15~29세 청년 취업자는 2022년 11월 이후 35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고령 근로자가 1명 늘면 청년 고용은 0.4~1.5명 줄었다. 임금체계 개편 없는 단순한 정년연장은 세대 갈등을 키울 뿐이다. 기업의 부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현행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 아래서는 정년이 연장될수록 인건비가 급증한다.
재계는 정년을 65세로 올릴 경우 고령 근로자 고용 유지에 따른 비용이 연간 30조원을 넘을 수 있다고 추산한다. 특히 인건비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
일본은 정년연장 문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12년에 걸쳐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다시 65세까지 점진적으로 높였다. 2013년에는 ‘정년연장’ 대신 ‘고용확보 조치’를 도입해 기업이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임금은 55세를 기준으로 동결·삭감하면서 직무 조정을 병행했다. 그 결과 60~64세 남성 취업률이 84%, 여성은 65%에 달했다. 숙련 인력 유지와 청년 고용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한국은 이런 일본식 현실주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치 일정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속도를 앞당기기보다, 업종별 여건과 기업 규모에 맞는 다양한 고용연장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의 획일적 정년연장은 오히려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 재교육·전직 지원, 세대 간 일자리 균형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정년연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나이만 올리는 식의 단순 연장은 해법이 아니다. 고령화에 맞는 노동시장 구조 개편과 사회적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 일본이 보여준 것처럼 점진적 조정과 자율적 선택이 지속 가능한 길이다.
노동계와 정치권은 연내 입법을 서두르기보다 고용의 세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 없는 정년연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