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번 칼럼은 최근 가자지구에서 성립된 휴전의 의미와 한계를 짚는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 수석 기자인 소르와르 알람은 이번 합의가 단순한 ‘전투의 중단’이 아니라 오랜 점령과 불평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간신히 유지되는 생명선임을 강조한다. 칼럼은 휴전의 구조적 취약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이스라엘의 지속적 위반과 국제사회의 소극적 대응, 그리고 걸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지적한다.

튀르키예, 이집트, 미국이 중재자로 나섰지만 정치적 의지가 흔들리면 합의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도 담았다. 특히 “정의없는 평화는 없다”는 문장은 이 글의 핵심 메시지로 인도주의적 지원과 외교적 압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을 환기시킨다.

 

소르와르 알람 아나돌루통신 수석 기자. ⓒ천지일보
소르와르 알람 아나돌루통신 수석 기자. ⓒ천지일보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선 된 휴전

근본 문제 해결치 못한 채 이뤄져

매우 위태롭고 불완전한 ‘전투 중단’

 

봉쇄·점령 계속, 난민 귀환권 무시

걸프 국가들도 개입 나서기 꺼려해

 

그럼에도 휴전은 조금의 회복 도와

이번 휴전을 끝 아닌 시작으로 봐야

점령이 끝나지 않는 한 평화도 없다

 

가자지구의 최근 휴전은 상상하기 어려운 참화를 견뎌온 사람들에게 희미한 희망의 불빛을 가져왔다. 2년이 넘는 폭격과 강제 이주, 그리고 굶주림 끝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번 휴전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한 줄기 안도감으로 붙잡고 있다. 그러나 피의 악순환이 멈춘 지금조차, 이른바 ‘평화 협정’이라 불리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확실한지 외면하기 어렵다.

수십 년간 반복된 가자지구 폭력의 순환을 지켜본 이로써, 이번 휴전은 생명선이자 경고로 보인다. 생명선인 이유는 가자 주민들이 남은 삶의 잔해를 재건할 기회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정의와 책임이 결여된 휴전은 언제든 이전처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이집트, 그리고 미국이 깊이 관여해 중재한 이번 합의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졌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스라엘의 위반이 이미 시작됐고 지역 내 정치적 분열은 여전히 날카롭다. 걸프 국가들은 여전히 소극적이며 점령자와 피점령자 간의 권력 불균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 위태로운 휴전은 생명과도 같다.

◆모래 위에 세워진 평화

솔직히 말하자. 이번 합의는 가자시티의 무너진 벽만큼이나 취약하다. 평화를 약속하지만 근본적인 불의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봉쇄는 여전히 유지되고 점령은 계속되며, 난민의 귀환권은 외면당한다. 재건 과정은 팔레스타인 생존보다 이스라엘의 안보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정치적 전제조건에 묶여 있다.

소위 ‘단계적 철수’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자지구의 상당 부분에 대한 안보 통제권을 유지한다. 하마스는 무장을 해제해야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이에 상응하는 의무가 없다. 국제적 감시가 언급되긴 하지만 이스라엘이 합의를 위반했을 때 이를 책임지게 할 구체적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권, 책임, 이동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없는 이 휴전은 흔들리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과 같다. 양측 간의 불신, 가자지구 주민들의 깊은 트라우마, 그리고 경제 붕괴는 평화를 극도로 취약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순간, 분노는 다시 들끓을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이번 합의가 ‘다음 전쟁 전의 잠시 휴식’으로 끝날 가능성이다. 그렇게 된다면 가자지구는 또다시 재건과 파괴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걸프 국가들이 주저하는 이유

걸프 아랍 국가들의 주저는 특히 두드러진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한다는 수사적 발언을 반복하지만, 인도적 지원 이상의 깊은 개입은 피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치적이면서도 경제적이고 전략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이스라엘 및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이들에게 가자지구 재건에 전폭적으로 나서는 일은 새로 구축한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재건한 시설이 다음 이스라엘 공습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현실적이다.

많은 걸프 지도자들은 전후 재건이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를 반대하면서 또 다른 교착이 생겼다. 그 사이 이들 국가는 경제 다각화, 사회 개혁, 지역 재편 등 자국 내 과제에 집중하며 우선순위를 안쪽으로 돌리고 있다.

걸프 국가들에게는 ‘아랍 연대’를 외치는 성명서를 내는 것이 이스라엘이나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들의 머뭇거림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공허한 찬사 속에 남겨뒀다. 연설에서는 기려지지만 예산에서는 잊힌 존재로.

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의 자발리아 난민 캠프에서 파괴된 건물에 앉아 있는 팔레스타인인. (출처: 뉴시스)
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의 자발리아 난민 캠프에서 파괴된 건물에 앉아 있는 팔레스타인인. (출처: 뉴시스)

◆튀르키예, 이집트, 미국의 역할

튀르키예, 이집트, 미국은 이번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각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동기는 서로 다르다.

이집트는 가자지구의 이웃으로서 핵심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이집트는 회담을 주최하고 단계적 재건안을 제시했으며 인도적 필요와 지역 안정을 절충하려 했다. 이집트의 접근은 현실적이다. 국경의 혼란을 막고 외교적 영향력을 유지하며 난민이 시나이반도로 몰려드는 사태를 피하려는 것이다.

튀르키예는 보다 도덕적 입장을 취했다. 국제무대에서 팔레스타인 권리를 꾸준히 옹호하며 팔레스타인 고통을 인정하는 합의를 밀어붙였다.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은 제한적이지만 이슬람권 연대를 강화하고 국제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한편 미국은 여전히 핵심 중재자다. 이번 합의 곳곳에는 워싱턴의 손길이 묻어 있다. 안보 조정부터 재건 감시까지 미국의 압력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이 제한된 휴전조차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접근은 여전히 ‘정의보다 안정, 주권보다 안보’를 우선시하는 오래된 편향을 드러낸다.

이 삼각 중재 구조, 즉 튀르키예, 이집트, 미국이 휴전을 이끌어냈지만 이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 셋 중 하나라도 흔들리면 합의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위반

휴전 발표 이후의 이스라엘 행동은 왜 팔레스타인인들이 여전히 회의적인지를 보여준다. 공식적 약속에도 이스라엘군은 여전히 가자지구 내 침입과 체포, 항공 정찰을 계속하고 있다. 재건 자재는 검문소에서 막히고 구호품 차량은 지연된다. 봉쇄는 여전히 유효해 이 고립된 지역의 경제를 질식시키고 주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또한 가자지구 향후 통치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여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미국이 지원한 계획마저 훼손하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의 극우 장관들은 ‘안보 작전 지속’을 공공연히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상 무기한 통제를 뜻한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번 휴전을 진정한 평화로의 발걸음이 아닌 전술적 ‘정지’로 취급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잔혹할 정도로 익숙하다. 폭탄은 잠시 멈추더라도 점령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게는 절실한 휴전

이 모든 결함에도 이번 휴전은 여전히 중요하다. 가자지구 주민들에게는 남은 마지막 희망의 끈이기 때문이다.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거의 모든 이가 집을 잃은 폭격 끝에 이 불안한 평화는 생명줄이다. 병원이 다시 문을 열고 아이들이 드론 소리 없이 잠들며 가족들이 실종된 이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이번 휴전은 기회의 창이다. 수개월 만에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비록 제한적이지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낼 여지를 얻었다.

이 휴전이 지켜진다면 보다 지속적인 평화로 나아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재정비할 수 있고 지역 국가들이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은 정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휴전이 무너지면 인도주의적 재앙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수준으로 심화될 것이다. 가자지구는 또 한 번의 전면전을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세계는 다시 병원이 잿더미로 변하고 아이들이 잔해 속에 묻히며 국제법이 조롱당하는 모습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세계가 해야 할 일

국제사회는 이번 휴전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여겨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원이 닿도록 보장하고 봉쇄를 해제하며, 이스라엘의 위반 행위를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한다. 걸프 국가들도 말뿐인 연대를 넘어 실질적인 재정 지원과 외교적 압력을 동반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떤 정치적 해결의 중심에 서야 한다. 세계는 오랫동안 ‘가자지구에 대해’ 말했을 뿐, ‘가자지구와 함께’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이번 휴전이 의미를 가지려면 점령의 종식, 주권의 회복, 그리고 가자지구에서 다시는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없도록 하는 길로 이어져야 한다.

◆결론

이번 휴전은 평화가 아니다. 단지 잠시 멈춘 것이다. 불완전하고, 불평등하며, 언제든 깨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절박하게 필요한 생존과 성찰의 순간이기도 하다.

이 휴전이 유지된다면 가자는 치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세계는 또다시 팔레스타인인들을 외면한 셈이 된다.

수많은 전쟁을 취재해 온 기자로서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이번만큼은 이스라엘이 이 휴전의 한계를 시험할 때, 세계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의없는 평화는 없으며 점령 아래에서는 정의도 없다.

지금 가자지구는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그 숨이 다시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정치인이나 장군들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침묵 속에 묻지 않으려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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