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이후 세계는 한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체제를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지역 강국의 대두, 그리고 세계화의 균열은 이 질서의 지속 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평화와 정의를 위한 방사모로 협의회 무사 다마오 사무총장은 이러한 격변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국가들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美 중심으로 구축된 전후 세계질서
비서방 국가 주권 제한한다는 비판
이에 일각서 ‘전략적 자율성’ 나와
이란, 이슬람 혁명 후 독립 노선 확립
美 제재 속 자율적 생존 전략 발전해
반면 아세안 ‘참여적 자율성’ 제도화
미중 떠나 역내 협력과 중립을 유지
회원국 간 이해 차이 등 한계는 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국제 질서는 미국의 부상에 의해 근본적으로 형성됐다. 유엔, 브레튼우즈 체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그리고 세계무역 구조 등으로 대표되는 1945년 이후의 이 체제는 단지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우위를 반영한 것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라는 미국의 이념적 가치가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지자들은 이러한 틀을 국제적 안정과 번영의 초석으로 본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를 서방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미국의 영향권 밖에 있는 국가들의 주권을 제한하는 위계적 질서로 간주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의 추구는 세계적 위계 속을 헤쳐나가려는 국가들의 핵심적 특징이 됐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외교 및 안보 정책에서 외부의 강요나 의존 없이 자국이 주권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는 고립주의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강대국이 지배하는 체제 속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관점에서 이란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상반되면서도 시사적인 두 접근법을 보여준다. 하나는 저항과 불복종에 기초한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유연성과 외교를 기반으로 한 모델이다.
◆미국 주도 국제체제와 주권의 한계
전후 국제체제는 미국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결합해 미국의 패권을 제도화했다. 미국의 군사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걸쳐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같은 금융기관들은 세계 경제 거버넌스의 틀을 규정했다. 또한 달러의 지배적 지위는 이 힘을 더욱 강화해 세계 금융 접근성이 미국이 정의한 규범 준수 여부에 달리게 했다.
이 체제는 흔히 ‘규범 기반 질서’로 정당화되지만 실제로는 그 규범이 설계자의 전략적 이익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동 개입, 제재 정책 등은 이 체제의 이중 기준을 드러냈다.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재등장, 그리고 지역 강국들의 적극적 행보로 세계가 다극화로 이동함에 따라 ‘자율성’의 문제는 다시 긴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란, ‘저항을 통한 전략적 자율성’
미국 주도의 질서에 통합되기를 거부한 국가들 중 이란은 가장 두드러진 사례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테헤란은 혁명 이념, 이슬람 통치, 반제국주의에 뿌리를 둔 독립 정책을 추구해왔다. 이 혁명은 단순한 국내 격변이 아니라 서방의 지배에 맞선 정치적·문명적 주권의 선언이었다.
이란 근현대사는 자율성이 왜 국가 정체성의 중심이 됐는지를 보여준다.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에 대한 쿠데타는 서방의 내정 간섭을 극명히 드러냈고 이는 서방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정치적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혁명 이후 테헤란은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난 외교 구조를 구축하려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라 불리는 역내 동맹 및 대리세력 네트워크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예멘의 후티 운동 등을 지원함으로써 전략적 깊이를 확장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 패권에 도전했다.
테헤란의 관점에서 이러한 네트워크는 외세 개입에 대한 방어적 수단이다. 반면 미국은 이를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행위로 본다. 이러한 대립은 구조적 갈등을 드러낸다. 즉, 미국 주도의 체제는 자국 규범에 대한 ‘순응’을 기대하지만 이란은 이념과 안보 틀 안에서 ‘자결권’을 주장한다.
경제적으로 이란의 전략적 자율성은 수십년간의 제재 속에서 가장 혹독한 시험을 받았다. 제재는 인플레이션, 실업, 통화가치 폭락 등 심각한 타격을 입혔지만, 동시에 자급자족과 지역 무역에 기반한 저항 경제를 강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란의 역설은 압박 속에서도 생존하고 적응하는 능력에 있다. 중국·러시아와의 경제협력 심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 가입, 아시아 시장으로의 석유 수출 전환 등을 통해 이란은 고립을 다변화의 동력으로 바꾸었다. 제재는 이란의 자율성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다극 질서로의 전환을 가속화했다.
핵 문제는 이란의 저항적 자율성을 상징한다. 2015년 체결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은 한때 이란의 핵 기술권과 비확산 요구 사이의 절충을 이뤘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탈퇴 결정은 서방의 신뢰 불가능성을 이란의 시각에서 확인시켜줬다. 이후 이란은 핵 활동을 재개하며 ‘회복력’과 ‘전략적 불복종’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아세안의 외교: 참여를 통한 전략적 자율성
이란의 대결적 모델과 달리 아세안은 ‘저항’이 아니라 ‘외교·합의·유연성’에 기반한 전략적 자율성의 길을 걸어왔다. 1967년 냉전기 설립된 아세안은 역사적으로 외세 지배와 내전의 상처를 지닌 지역에서 출발했다. 창설 원칙인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은 강대국 경쟁 속에서도 역내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동남아의 냉전 경험은 동맹의 대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전쟁과 초강대국의 개입은 의존의 위험을 입증했다. 이에 아세안은 ‘평화·자유·중립의 지역’을 표방하며 강대국 경쟁으로부터의 완충지대를 조성했다.
수십년에 걸쳐 아세안은 외교를 통해 자율성을 제도화했다. 미국, 중국, 일본, 인도, 유럽연합 등 주요 강대국 모두와 관계를 맺되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기울지 않았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역내 안보 의제를 주도하면서도 내부 합의를 유지했다. 이러한 균형 전략, 즉 ‘헤징(hedging)’은 아세안이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면서도 미국과 안보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했다.
아세안의 성공은 취약성을 영향력으로 전환한 데 있다. 이란이 저항으로 자율성을 확보했다면 아세안은 ‘포용’을 통해 자율성을 쌓았다. 미국 주도의 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지 않고 참여와 공동 소유를 확대함으로써 지배력을 희석시킨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은 중립을 유지하고 지역을 강대국 경쟁의 무대로 만들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다만 아세안의 외교적 자율성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남중국해 문제나 미얀마 사태 같은 안보 이슈에서 회원국 간 이해가 엇갈리며 집단 대응력이 약화된다. 합의제 의사결정 방식은 특정 국가의 지배를 막는 대신 결정적 행동을 제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세안의 지속성과 영향력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실용적 협력 자율성의 힘을 보여준다.
◆결론: 다원적 세계질서로의 이행
이란과 아세안의 경험은 보다 다원적인, 단극 체제 이후의 질서 출현을 시사한다. 미국의 지배력 신뢰가 약화되고 대체 권력 중심이 부상함에 따라 ‘전략적 자율성’은 국제관계를 규정짓는 핵심 개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율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당성, 적응력, 협력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
이란의 저항은 주권을 지켜냈지만 막대한 경제적·정치적 대가를 치렀다. 아세안의 외교는 유연성을 확보했지만 일관성의 희생을 감수했다. 두 모델 모두 자율성이 고정된 성취가 아니라 글로벌 구조와 국가적 열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되는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미국 주도의 질서가 흔들리는 오늘날, 이란의 불복적 자율성과 아세안의 외교적 기민성은 국가들이 다가오는 다극 세계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적응하며 나아가 새로운 질서의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