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카메룬 언론사 카메르 프레스 미디어의 편집장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타미탄 버트랜드는 대선 이후 카메룬의 극단적인 정치적 긴장을 현지 시각에서 분석했다.

버트랜드 편집장은 수십년간 권좌를 지켜온 폴 비야 대통령의 여덟 번째 연임 도전이 불러온 국민적 분열과 사회적 피로를 냉정히 짚으며, 이번 선거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카메룬 민주주의의 존속 여부를 가를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북부 지역의 격렬한 시위, 야당 후보 이사 치로마 바카리의 부상, 그리고 선거관리기구의 불신이 얽히며 “국가의 정당성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8연임 43년째 대통령 vs 야당 후보

불신 속 유권자의 분노와 절망 폭발

“선거가 국민 의지 반영 안해 좌절”

일부 도시에서는 수천명 시위 나서

타미탄 버트랜드 카메르 프레스 미디어 편집장. ⓒ천지일보
타미탄 버트랜드 카메르 프레스 미디어 편집장. ⓒ천지일보

2025년 카메룬 대통령 선거는 중앙아프리카의 이 나라를 수십년 만에 가장 긴장된 정치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1982년부터 집권해온 92세의 폴 비야 대통령이 여덟 번째 연임을 노리면서 카메룬의 미래는 ‘지속’과 ‘변화 요구’ 사이에서 갈림길에 선 듯하다.

많은 시민에게 지난 12일의 투표는 단순히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망가진 제도 속에서 목소리를 되찾는 일’이었다. 카메룬 국민이 공식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운데, 가루아, 마루아, 바멘다, 두알라 같은 주요 도시의 거리에는 불확실성과 좌절감, 그리고 폭발 직전의 불안감이 뒤섞인 공기가 감돌고 있다.

전 통신장관 출신이자 야당 후보로 변신한 이사 치로마 바카리가 이번 위기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정치적 기반인 북부 지역, 특히 가루아와 마루아 일대에서는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를 인정하라”는 구호 아래 시위가 번지고 있다. 시위대는 “우리는 이미 결정했다! 이사가 우리의 선택이다!”라고 외치며 정의와 투명성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들었다. 북부 및 극북부 지역의 공공기관, 시장, 교통망이 파업으로 사실상 마비됐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치안 병력을 대거 배치했지만 목격자들은 충돌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고 전한다. 가루아 중앙시장에 있던 주민 압둘 카림은 기자들에게 “변화 없는 투표는 이제 끝이다. 잃을 게 없다. 이번 승리를 빼앗는다면 이 나라는 불타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조기 승리 선언이 “국가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긴장이 오랜 정치 피로감과 사회적 불만이 쌓인 결과라고 분석한다. 야운데 2대학의 수잔 응가사 정치학 박사는 “문제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정당성과 공정성, 그리고 선거가 더 이상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인식에 있다”고 지적했다.

폴 비야의 통치는 세대를 넘어섰다. 그는 1982년 집권 당시 안정과 개혁을 약속하며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이후 카메룬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 중 하나로 변모했다. 그의 지도 아래 1990년 야당이 합법화됐으나 그 이후의 선거들은 부정, 협박, 선거관리기구 조작 의혹으로 얼룩졌다.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연임 제한이 철폐되면서 비야는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역사학자 아킬 탄종은 “그(헌법) 개정이 희망을 무너뜨렸다. 젊은 카메룬인들에게 리더십은 실력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회고했다.

올해 선거를 앞둔 몇 달 동안, 정치적 연극과 공약, 전략적 탄압이 이어졌다. 국가선거관리위원회(ELECAM)는 야당 지도자 모리스 캄토를 실격 처리해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한때 비야의 측근이었던 치로마는 ‘내부를 잘 아는 개혁가’로 자신을 내세우며 낡은 체제를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마루아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너무 오랫동안 권력은 소수의 특권이었다. 이번 선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존엄을 위한 것”이라고 외쳤다. 이 메시지는 오랜 빈곤과 낙후 속에서도 여당을 지지해온 북부 주민들에게 깊이 울려 퍼졌다.

26일(현지시간) 카메룬 두알라 뉴벨 지역에서 열린 시위에서 야당 대선 후보 이사 치로마의 지지자들이 피켓과 카메룬 국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카메룬 두알라 뉴벨 지역에서 열린 시위에서 야당 대선 후보 이사 치로마의 지지자들이 피켓과 카메룬 국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커지는 북부 반발에 정부도 우려

투표 당일, 전국은 삼엄한 경비 속에 선거를 치렀다. 인터넷 제한, 기자 체포, 영어권 지역 투표소 혼란 등의 보고는 조작 우려를 키웠다. 그럼에도 전국적으로 투표율은 높았는데 이는 분노이자 결의의 표시였다.

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넘었지만 공식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명확한 정보 부재 속에서 루머와 비난이 난무한다. 야당 지지자들은 각 투표소의 잠정 집계에서 치로마가 우세했다며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가루아와 마루아에서는 공무원들과 상인들이 “진짜 결과를 공개하라”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SNS에는 “우리의 표를 존중하라”,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시위대 수천명의 집회 영상이 퍼지고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격앙된 군중을 피해 지방 행정관이 도망쳤다는 소식도 있다. 주요 도로마다 검문소가 설치되고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군 순찰이 강화됐다.

야운데 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비야 대통령 대변인 르네 에마뉘엘 사디는 “외세가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며 인내를 촉구하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관계자는 “그들은 북부의 이탈이 권력 균형을 재편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연합(AU)과 유엔은 자제와 투명성을 촉구했다. 오랜 우방국 프랑스는 대화를 촉구했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유권자 협박과 폭력 보고에 우려를 표명했다.

북부 지역이 시위로 뒤덮인 가운데 분쟁이 지속 중인 북서부·남서부 영어권 지역도 불안한 상태다. 이 지역에서는 분리주의자들의 위협과 치안 불안으로 투표율은 매우 낮았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의 불안이 북부의 반정부 정서와 결합할 경우, 국가 전체의 정당성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바멘다에서 전쟁으로 피난 온 한 교사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투표했지만 우리의 표가 반영된다고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비야, 전쟁, 그리고 거짓 약속에 모두 지쳤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에게 이번 선거는 국가 정치와 해결되지 않은 분쟁이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를 드러냈다.

선거 이후의 불확실성은 이미 카메룬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앙아프리카 CFA 프랑은 당장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은 불안하다. 통행금지와 봉쇄로 소상공인 매출이 급감했고, 식량 공급의 핵심 지역인 북부 농업 지대에서는 시위와 도로 봉쇄로 물류가 차질을 빚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장기적 불안이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투자자 이탈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야운데 거리에서부터 마루아의 먼지길까지 분노는 피할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상인 줄리엔 음바사는 “이건 단순히 정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우리 아이들은 굶주리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 누가 이기든 이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알라의 한 대학생은 “우리는 왕조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은 양측 모두 대화와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 진압설이 돌면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선거 결과 따라 폭력 사태 가능성

카메룬은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선거 이후의 교착상태가 국가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오랜 분열을 더 깊게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의 방향은 정부와 야당의 선택에 달려 있다. 헌법위원회가 논란 많은 결과를 확정할 경우, 대규모 시위가 격화돼 폭력 사태나 지역 분리주의 재점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국제 중재가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AU 옵서버는 2019년 평화 이니셔티브와 유사한 ‘전국 대화’ 개최를 제안했다. AU 특사 파투 벤수다는 “카메룬은 또다시 폭력의 악순환에 빠질 여유가 없다. 국민의 목소리는 전쟁터가 아니라 제도 안에서 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대선은 카메룬 민주주의의 취약함과 회복력을 동시에 드러냈다. 이번 선거는 비야와 치로마만의 시험이 아니라 국가 자체에 대한 시험이다. 그 결과가 개혁이든, 또 다른 억압이든, 2025년 10월의 사건은 향후 세대의 카메룬 정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해가 지는 야운데의 거리에는 긴장 속에서도 희망이 감돈다. 북부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가 나라 전역에 메아리친다. “변화가 아니면 혼돈이다.” 그 외침 속에 나라의 미래를 되찾으려는 국민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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