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미국의 예외주의가 세계 정치와 정의의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성찰한다. 필리핀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철학과 부교수 크리스토퍼 라이언 마볼록은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동시에 세계 질서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재편해온 현실을 비판적으로 짚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경제 정책을 사례로 들어 미국이 스스로를 ‘세계의 경찰’로 위치시키는 과정이 어떻게 국제 불평등과 구조적 불공정을 심화시키는지를 분석한다.
칼럼의 결론은 명확하다. 진정한 예외주의의 의미는 전쟁이 아니라 인류가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미국이 가진 자원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美, 스스로 세계 질서 주도 자격 있고
민주주의와 정의의 수호자로 규정해
국제 분쟁 개입·해외 정부 교체 강행
진정한 목표는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 국가들 많은데
美 빈곤과 기후변화 문제에는 무관심
인류 정의와 생존 위해 자원 사용해야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란 미국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그에 따라 세계에서 정치적·사회문화적·경제적으로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닌다는 생각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미국의 이익은 세계 질서 위에 군림하며 미국의 가치와 제도를 중심으로 한 미래의 비전을 규정하고 그 전략을 주도한다.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자유민주주의와 평등을 찬양하며 미국이 인간 개인에게 자유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었다. 이런 식으로 개인의 영예나 성취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높은 가치로 자리 잡았고, 현대 사회에서 ‘성공한 인간’의 전형이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은 초국가적 범죄조직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카리브해에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마약 밀매를 방치할 경우 미국이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위협했다. 차베스주의의 붕괴와 미국 및 동맹국의 강력한 제재로 ‘실패한 국가’가 된 베네수엘라는 현재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미국 최대 시장으로 불법 약물을 보내는 중간 경유지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을 ‘민주주의와 정의의 수호자’라 여기며 세계 질서를 지키는 경찰처럼 행동한다.
미국은 사실 자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국제 분쟁에도 개입해왔다.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정부에 맞서 싸우도록 민병대와 반군에 무기를 지원했다. 미국은 이런 행위를 ‘자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념이 미국의 영향력을 거부한 사회를 파괴하기도 했다.
미국은 단순히 적대국이나 반미 인물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기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불량’하거나 ‘비자유적’이라 여기는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비밀 분쟁이나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본질적 목표는 ‘비즈니스’다. 따라서 독재자라 해도 미국의 우방이라면 눈감는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세계 패권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할까? 이를 위해 미국은 무엇보다 군사 예산을 최우선으로 삼고 동맹국들에도 같은 태도를 요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늘리지 않으면 미국이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경고했다. 현재 나토 회원국들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에서 5%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토 내부에서는 ‘유럽이 이제 미국 없이 스스로 방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크게 기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B-2 폭격기를 비행시켜 미국의 군사 우위를 과시했다. 이 20억 달러짜리 스텔스 폭격기는 지하 200m의 콘크리트를 관통하는 폭탄으로 이란의 핵시설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데 사용됐다. 이 조치로 미국은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했고 이스라엘은 안도감을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하마스와의 휴전에 동의한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비록 불안정한 합의였지만 6만 7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을 희생시킨 잔혹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그 경제력을 빈곤이나 기후변화 같은 다른 전 지구적 문제 해결에 사용하지 못하는가? 개발학자들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는 5천억 달러만 있으면 수천만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외국 자본에 시장을 개방하며 7억명을 빈곤에서 구제했다. 이는 덩샤오핑이 과거의 후진적 정책이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하고 단행한 조치였다. 오늘날 중국은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미래의 세계 패권을 노리며 그 대가가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강력한 군사적 존재감을 유지하며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다양한 실존적 위협에 시달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 불평등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1억 2600만명이 극빈 상태에 있으며 그 대부분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거주한다. 이들은 하루 2달러도 벌지 못한다. 또 10억명은 식수에 접근하지 못하고 매년 5세 미만 아동 3만명이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한다. 아이 한 명에게 필요한 예방접종 비용은 고작 10달러다.
부유층은 사치 속에 살지만 수백만명의 빈곤층과 원주민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인다. 이는 단순히 ‘잘못된 개인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불균등한 분배와 빈국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힘을 가지지 못한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세계의 자유 부족은 구조적 불평등이 각국의 존재 조건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노스(부유한 북반구 국가들)는 금융과 무역 정책을 통해 가난한 농민들을 약화시키며 기술 대기업들은 인공지능(AI)과 기계의 부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단지 첨단 기술이 아니라 부국이 빈국의 현실을 통제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
디지털 격차 또한 지식과 정보 접근의 거대한 불평등을 낳는다. 데이터 저장 시설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굶주린 아이들에게 아침 한 끼를 제공하지 못한다.
미국 예외주의의 참된 의미는 전쟁이 아니라 인류가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미국이 가진 막대한 자원을 위기 해결에 쓰는 데 있다는 점을 깨닫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