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외교 정책과 유럽연합(EU) 사안을 취재해 온 프리랜서 기자 보얀 스토이코브스키의 이번 칼럼은 인공지능(AI)이 군사력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현실을 짚는다. 핵무기·스텔스기·정밀유도무기 이후 새로운 ‘질적 우위’로 떠오른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안보 질서를 재편하는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군사 AI 경쟁을 주도하는 가운데 유럽과 중견국들은 윤리적·정책적 딜레마 속에서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자율무기와 사이버전, 정보전이 실제 전장과 맞닿은 오늘, AI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과 윤리, 안보의 경계가 빠르게 흐려지는 가운데 국가와 사회는 ‘AI 군비 경쟁’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보얀 스토이코브스키. ⓒ천지일보.
보얀 스토이코브스키. ⓒ천지일보.

군사력 본질 바꾸는 전략 전환점 된 AI

국가 기반시설이 AI 시대 새 전장으로

 

美 민간 혁신과 군사 결합 체계 구축해

중국은 국가 주도의 중앙집권적 전략

‘윤리·규제’ 유럽, 국방 AI 활용 뒤처져

 

중견국 AI 통해 전력 열세 보완 가능

동시에 기술 의존으로 취약성도 커져

각국 투자·규제·혁신에 균형 모색해야

 수십년 동안 기술적 우위는 군사력의 핵심 축이었다. 핵무기, 스텔스기, 정밀유도 미사일이 세계의 위계를 규정했다. 그러나 오늘날 인공지능(AI)은 단순한 우위가 아니라 질적 전환을 예고한다. AI는 군이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자동화하며 심지어 전장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이 변화의 파급력은 막대하다. 국방 분야에서 AI를 선점한 국가는 전략적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뒤처진 국가는 비대칭적 취약성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AI 군비 경쟁의 주도국

이 경쟁의 선두에는 미국과 중국이 있지만 접근 방식은 극명히 다르다.

미국은 오랜 국방 연구개발 경험과 민간 기술 혁신, 클라우드 인프라를 결합했다. AI 기반 드론 군집, 전투기 예측 정비 시스템, 첨단 사이버보안 기술 등이 이미 미군 작전에 통합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AI 연구와 신속한 시제품 개발·실험을 결합한 중앙집권적 모델을 취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AI를 단순한 기술 우위가 아닌, 미래 전쟁의 교전 규칙 자체를 재편할 전략적 우선순위로 명확히 설정했다.

유럽은 기술력에도 복잡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EU는 AI 연구·윤리·규제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지만 국방 분야에서의 실질적 적용은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자율무기 논란을 의식한 유럽 각국은 전투 현장 AI 도입에 신중하다. 그러나 발트 3국, 폴란드, 발칸 등 러시아의 영향권에 가까운 지역은 안보 현실상 AI 방위 기술에서 뒤처질 여유가 없다.

◆드론과 사이버전: AI 경쟁의 최전선

이 군비 경쟁의 가장 눈에 띄는 영역은 자율 및 반자율 드론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튀르키예의 바이락타르 드론에서 중국제 자폭형 드론에 이르기까지 드론 기술의 치명적 효율성을 보여줬다. AI 알고리즘은 이런 드론들이 복잡한 지형을 탐색하고 목표를 식별하며 인간의 개입 없이 군집 작전을 수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잘못된 손에 들어가면 지역 세력 균형을 뒤흔들거나 예고 없는 국경 침공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사이버보안 역시 AI가 규칙을 다시 쓰는 영역이다.

머신러닝은 인간보다 빠르게 네트워크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공격을 예측하며 대응책을 자동화한다. 반면 적대국들은 AI 기반 악성코드, 딥페이크 정보전, 예측형 사이버공격 기술을 개발 중이다. 2022~2025년 동안 이미 유럽 전력망, 아시아태평양 위성 시스템 등 주요 기반시설을 노린 AI 보조 사이버공격이 보고됐다. 서부 발칸 등 전략적 요충지 국가들에게 디지털 인프라의 회복력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2022년 11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 포트 어윈에서 진행된 미 육군의 ‘프로젝트 컨버전스’ 훈련 중 영국 군인들이 드론을 발사하고 있다. 이 훈련은 인공지능(AI)·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센서와 무기, 지휘통제 체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미군의 차세대 전투 실험 프로그램이다. (출처: 뉴시스)
2022년 11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 포트 어윈에서 진행된 미 육군의 ‘프로젝트 컨버전스’ 훈련 중 영국 군인들이 드론을 발사하고 있다. 이 훈련은 인공지능(AI)·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센서와 무기, 지휘통제 체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미군의 차세대 전투 실험 프로그램이다. (출처: 뉴시스)

◆‘이중용도(dual-use)’ 기술의 딜레마

AI의 이중용도 특성은 국제 안보 환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핵무기나 극초음속 미사일과 달리 AI 소프트웨어는 물류나 얼굴인식 등 민간 분야에도 쉽게 전용된다. 이 때문에 군비통제가 어렵다. 자율드론과 상업용 배달로봇을 동시에 구동하는 알고리즘을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까?

‘바세나르 체제(Wassenaar Arrangement)’ 같은 기존 수출통제 체계는 급속히 확산되는 AI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AI는 대부분의 정부가 감시하기도 전에 퍼지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비대칭 전쟁을 낳고 있다.

중견국에게 AI는 기회이자 위험이다.

한편으로는 AI가 수적·전통적 열세를 상쇄할 수 있는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체급을 뛰어넘는’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상대가 더 진보된 AI 무기를 보유한다면 오히려 취약해진다. 예를 들어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인접 강대국의 AI 감시, 전자전, 예측 물류 역량이 지역권력 구도를 급변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려면 AI 투자와 국제 협력이 모두 필요하다.

◆윤리적 과제와 전략적 기회

AI 무기의 윤리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자율 시스템은 책임소재, 인간의 판단, 치명적 무력 사용의 기준 등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제네바협약을 포함한 국제법은 아직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AI가 관여한 단 한 번의 오판이 지역 분쟁을 전면전으로 확산시킬 수도 있다.

정책결정자에게는 혁신과 책임의 균형이 과제다. 너무 늦게 투자하면 뒤처지고, 무모한 도입은 돌이킬 수 없는 충돌을 초래한다.

그러나 이 딜레마 속에는 전략적 기회도 있다. AI를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통치·안보 회복력의 핵심 역량으로 육성한다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책임 있는 AI’ 접근이 강력한 국방 응용과 결합된다면 21세기형 ‘윤리적 전략 강국’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다.

작년 5월 2일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프랭크 켄달 미 공군장관이 AI로 조종되는 개조형 F-16인 X-62A 비스타 전투기 조종석에 앉는 모습. (출처: 뉴시스)
작년 5월 2일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프랭크 켄달 미 공군장관이 AI로 조종되는 개조형 F-16인 X-62A 비스타 전투기 조종석에 앉는 모습. (출처: 뉴시스)

◆미래를 위한 다층적 전략

국가들은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자국 AI 인재를 양성하고 민간 혁신을 장려하며, 안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제 표준 제정에 참여해야 한다.

서부 발칸 같은 신흥 시장과 기존 기술 허브 간의 협력은 AI 도입을 가속화하면서도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AI 프로젝트나 EU의 공동방위 프로그램은 소규모 국가들이 기술 경쟁에서 고립되지 않게 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AI는 핵무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에 대중 인식도 중요하다.

AI가 안보 인프라, 드론, 사이버방어에 통합돼도 그 변화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국민의 안전과 주권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와 투명성 확보, 시민 교육을 통해 민주적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AI 군비 경쟁은 더 이상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이미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며 전쟁·정보·국가안보의 규칙이 다시 쓰이고 있다. 정책결정자, 국방 전략가, 시민 모두에게 과제는 분명하다. 현명하게 투자하고, 신중히 규제하며, 책임 있게 혁신하라는 것이다.

AI를 전략 권력의 핵심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국가는 21세기를 정의할 갈등 속에서 주변화되거나 취약해질 수 있다.

발칸과 유럽의 교훈은 절박하다. 지정학적 긴장 지역과 외국 기술 의존, 역사적 취약성을 감안하면 AI는 단순한 기술 과제가 아니라 전략적 필수 요소다.

AI를 책임 있게 활용하면 억지력을 강화하고, 동맹을 공고히 하며, 국가 이익을 수호할 수 있다. 반대로 이를 외면하면 더 빠르고 대담하며 기술 통합에 주저하지 않는 국가들에 영향력을 내줄 것이다.

결국 AI 군비 경쟁은 세계 권력 변동의 거울이다. 더 빠르고, 더 똑똑하며, 점점 더 자동화된 세계다.

안보의 미래는 전장뿐 아니라 코드, 알고리즘, 그리고 데이터를 통찰로 바꾸는 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 도전에 과감히 대응하는 국가에겐 전략적 안정과 영향력이 주어질 것이고, 망설이는 국가는 깊고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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