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폭력’
한번만 같이 먹자던 저녁식사
식탁 오른 건 수면제 든 음료
손목 채워진 차가운 금속수갑
소리 지르자 테이프로 입막아

‘상담’으로 포장된 인권유린. 지난 20년간 약 2000건, 연평균 100건 안팎의 강제개종이 빚어졌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국제 NGO들은 “한국은 강제개종이 용인되는 유일한 민주국가”라고 경고했지만, 표심의 정치 앞에서 헌법 제20조(종교의 자유)와 제10조(인간의 존엄·행복추구권)는 구호로 전락했다. 본지는 ‘신천지인사이드-강제개종’ 연재를 통해 강제개종의 메커니즘과 법·제도의 빈틈을 해부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로 실효적 해법을 촉구하고자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챗GPT)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챗GPT)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신천지를 대상으로 하는 강제개종은 대개 ‘가족의 설득’이나 ‘종교 상담’이라는 온화한 말로 포장된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시간을 실제로 따라가 보면 그 포장은 곧바로 벗겨진다. 시작은 대체로 집 안 식탁에서 “몸에 좋다”는 한 잔의 음료 혹은 약이 섞였을지 모를 음식으로부터다.

의식이 흐려지는 사이 손목과 발목엔 ‘수갑’이라는 금속의 냉기가 닿고, 입과 다리는 박스테이프와 밧줄로 봉쇄된다. 이어 안대와 이어폰이 씌워지며 주변 소리는 차단되고, 가정용 봉고차·승합차로의 이송이 시작된다. 톨게이트·검문 구간을 넘길 때는 찬양이나 소음을 크게 틀어 구조 신호를 덮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동의 없이 휴대전화 등 통신 수단이 즉시 분리된다.

이 모든 과정에는 ‘동의서’ ‘교육일지’ 같은 서류가 따라붙어 사후 정당화의 흔적을 남기고, 현장에 드나드는 이들은 ‘상담사’ ‘도움 주는 교인’ 등으로 호명되지만 실질은 감금과 강요의 보조 인력이다. 피해자가 저항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결박을 강화하거나 장소를 옮겨 통제하고, 장시간에 걸친 설득·훈계·비난이 반복된다.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가 지난 2020년 4월 5일 유튜브를 통해 폭로한 구리이단상담소 신현욱 목사(구리초대교회)의 비리 고발 내용. 화면은 강제개종 피해자들의 실제 피해 모습. (유튜브 해당 동영상 캡처)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가 지난 2020년 4월 5일 유튜브를 통해 폭로한 구리이단상담소 신현욱 목사(구리초대교회)의 비리 고발 내용. 화면은 강제개종 피해자들의 실제 피해 모습. (유튜브 해당 동영상 캡처)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파출소 문턱까지 닿아도 사건은 ‘종교 갈등’ ‘가족 문제’라는 말로 축소되고, 초동조치가 미뤄지는 사이 다시 가족의 차량으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강제개종 사건은 수면제→수갑→격리→동의서 강요라는 일련의 단계가 이미 ‘알고리즘’처럼 굳어 있음을 보여준다.

◆식탁에서 시작된 폭력 ‘수면제’

폭력은 일상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시작됐다. 이상훈(가명)씨의 경우 출발점은 평범한 저녁 식탁이었다. “한 번만 같이 먹자”는 가족의 말 뒤로 수면제가 숨어 있었다. 의식이 흐려진 채 눈을 뜨자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눈앞에는 ‘개종 프로그램 동의서’가 놓였다. 목적지는 인천 영흥도의 외딴 펜션이었다. 창문 밖 풍경은 철저히 차단돼 있었고, 실내에는 낯선 이들이 드나들었다.

그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히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곧바로 제압당했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조차 “가족 간 문제”라는 말이 돌아왔다. 공권력의 망설임은 사실상 감금의 시간을 연장시키는 명분이 됐다. 학업은 중단됐고, 가족 관계는 ‘설득’이라는 이름의 압박 속에서 급격히 균열됐다.

장은영(가명, 20대)씨가 처음 납치·감금됐던 제부도 펜션 앞 바다에 서 있다. 장씨 뒤로 보이는 도로는 썰물 때만 길이 열려 오갈 수 있다. ⓒ천지일보DB
장은영(가명, 20대)씨가 처음 납치·감금됐던 제부도 펜션 앞 바다에 서 있다. 장씨 뒤로 보이는 도로는 썰물 때만 길이 열려 오갈 수 있다. ⓒ천지일보DB

비슷한 경험을 고미희(가명)씨도 증언한다. 새벽, 몸 위로 눌려오는 손, 즉시 따라붙은 수갑과 안대, 입과 다리를 감아 막는 박스테이프와 밧줄. 그는 봉고차에 실린 뒤 내비게이션 안내음이 들릴까 이어폰을 강제로 꽂아야 했고, 톨게이트를 지날 때는 찬송가가 폭음처럼 울려 비상 상황 신호가 묻혔다. 도착지는 창문이 합판으로 봉인된 낡은 집이었다. 씻을 권리도, 용변의 사생활도 없었다.

좁은 문틈으로 건네진 검은 비닐봉지가 그의 ‘화장실’이었다. ‘언제 끝나느냐’는 질문에 상담사는 처음엔 “이틀”이라 했고, “한 달은 더 있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결국 ‘개종된 척’ 연기 끝에 풀려나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선명한 의문은 도구였다. 수갑, 안대, 밧줄, 심지어 ‘안에서 열 수 없는’ 차량의 구조까지. 누가 이러한 물품과 방법을 제공했는가. 그는 “상담소가 부모에게 도구를 건네고, 사용법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줬다”고 말했다. 가족의 손을 빌린 제3자의 개입 정황이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두 팔 꺾으며 손목에 수갑 채워

서정남(가명)씨의 사건은 강제개종 ‘수법’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표준화돼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이미 2011년 1차 시도에서 황모 목사의 사주 아래 친족들이 결박·감금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실패 이후 가족과 개종 목사 측은 더 치밀한 2차 계획을 세웠다. 2012년 8월 5일 밤, 서씨는 평소처럼 가족과 식사하던 중 “입맛이 없으니 이걸 좀 먹어라”는 말과 함께 건네진 음식을 섭취했고, 곧 온몸의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지는 이상 증세를 느꼈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 누군가가 두 팔을 뒤로 꺾으며 손목에 금속 수갑을 채웠고, 다리와 허벅지에는 박스테이프가 겹겹이 감겼다. 소리를 지르자 입도 테이프로 봉해졌다.

이어 그는 ‘대형 여행용 가방’에 얼굴·목·어깨만 내놓은 채 밀어 넣어졌고, 아파트 15층에서 1층까지 심야 복도를 질질 끌려 내려왔다. 한밤중이라 인기척은 드물었고,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 전환 구간에서는 가족 중 한 명이 ‘짐’처럼 가방을 세워 두고 경계를 섰다.

강제개종 프로그램 피해자 윤영일(가명, 20대, 남, 제주도)씨가 지난 2022년 2월 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22년 1월 30일~2월 3일 발생한 강제개종 피해 정황을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DB
강제개종 프로그램 피해자 윤영일(가명, 20대, 남, 제주도)씨가 지난 2022년 2월 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22년 1월 30일~2월 3일 발생한 강제개종 피해 정황을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DB

차량 탑승 과정도 은폐와 소음 차단에 최적화돼 있었다. 가방째로 승용차 뒷좌석에 눕히듯 싣고, 좌석벨트와 추가 테이프를 이용해 움직임을 제한했다. 자정이 지난 시각, 차량은 대구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로 추정되는 노선을 달렸다. 4시간 남짓한 이동 동안 차량은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오디오 볼륨을 높여 외부에 비명이나 구조 신호가 새어 나갈 가능성을 차단했다. 내비게이션 안내음은 꺼져 있었고, 창문은 완전히 닫혀 있었다. 가끔 급정거가 있을 때마다 가방 속 서씨의 쇄골과 어깨가 가방 벽면에 부딪히는 통증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대구에서 경기도 양평까지 4시간 넘게 이동한 뒤, 그가 도착한 곳은 창문마다 철조망이 쳐진 기도원이었다. 내부는 탈출을 전제로 설계된 듯 감시 동선이 뚜렷했고, 화장실 출입조차 감시 하에 이뤄졌다. 그는 23일간 그 안에 갇혔다. 친구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부모 마음도 생각하라”는 말과 함께 현장을 떠났고, 재출동 끝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수면제→결박→가방→차량→격리 시설은 ‘개별 가족의 돌발 행동’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했다. 누군가 동선과 장비, 공간을 묶어 하나의 ‘작전’으로 설계하지 않고서는 재현되기 어려운 구조다.

강제개종 프로그램 동의서. 강제개종목사는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상담 동의서’를 작성하게 시킨다. 윤씨는 강제개종목사의 지시에 따라 5번 항목을 자필로 추가했다. ⓒ천지일보DB
강제개종 프로그램 동의서. 강제개종목사는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상담 동의서’를 작성하게 시킨다. 윤씨는 강제개종목사의 지시에 따라 5번 항목을 자필로 추가했다. ⓒ천지일보DB

◆‘가정 지킨다’는 명분, 수갑으로 변질

임지영(가명)씨의 사건은 ‘가정을 지키겠다’는 명분이 어떻게 수갑과 비밀번호 변경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오랜 간병과 가사노동 끝에 신앙에서 버팀목을 찾고 있던 그는 남편이 ‘이단’ 낙인을 근거로 개종 목사들과 접촉하면서 일상 전체가 흔들렸다. 경제권이 끊기고, 현관문 비밀번호가 바뀌었으며, 초등학생 자녀들은 어머니와 연락이 단절된 채 프로그램 동행을 강요받았다. 밤 10시 30분 그는 아파트 입구에서 검은색 승합차로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 한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고 다른 손은 붙잡혔으며 두 발은 박스테이프로 고정됐다. 4시간 넘는 이동 끝에 도착한 태안의 펜션에서 감금이 시작됐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쉽게 구하기 어려운 도구를 손에 쥐고 이런 방식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건, 누군가가 불안을 조장하며 ‘법을 어겨도 된다’는 확신을 주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정 회복’이라는 포장은 실은 불법을 가리는 덮개에 불과했다.

이상훈씨부터 임지영씨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수면제와 수갑, 박스테이프까지 동원되며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일이 강제개종에서 벌어지고 있다. 즉 강제개종은 신념의 다툼이 아니라 수법의 범죄인 셈이다. 신앙의 자유는 다수의 신념을 강요할 권리가 아니라 소수의 신념이 폭력 없이 유지될 권리임에도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점이 위 사례들에서 증명됐다. 강제개종 피해자들은 가족을 사주한 개종 목사들을 엄벌에 처해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간절함을 담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제개종은 인권문제입니다. 더 이상 저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강제개종을 거부하다 부모에 의해 질식사를 당한 구지인씨를 추모하며 강제개종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궐기대회가 2018년 1월 28일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DB
강제개종을 거부하다 부모에 의해 질식사를 당한 구지인씨를 추모하며 강제개종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궐기대회가 2018년 1월 28일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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