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사거리 교통신호가 오류를 일으켜 파란 불과 빨간 불이 동시에 켜진다면 운전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일단 ‘정지’하고 교차로에 진입하면 안 된다.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정책 메시지가 혼선을 일으킨다면 경제인을 비롯한 시민들은 주요 경제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리스크 관리는 재테크를 비롯한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이다. 리스크 관리에서 정보의 신뢰성과 객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자신이 해야 할 정책을 강단 있게 확실한 로드맵으로 제시하고 준수해야 한다. 물론 단기·중기·장기 로드맵을 각 정책 분야별로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념과 논쟁에 휘말려 아침과 점심, 저녁마다 스피커의 발언이 달라지고, 국정 방향이 ‘올바르다고 생각한 이념’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면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정책과 메시지를 둘러싼 혼선이 반복되면서 국정운영의 일관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 정책부터 통합 메시지까지 핵심 국정 아젠다에서 상충된 언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노란봉투법안 추진, 주식 양도소득세 강화와 법인세 인상 추진, 야당에 대한 폭력적 태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우선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경제 성장을 핵심 국정 기조로 내세웠다. 투자 유치와 기업 활동 지원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방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계 친화적 입법을 국회에서 적극 추진하는 등 상반된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자본은 불변자본(기계·부동산 등)과 가변자본(노동력)으로 구분되며, 카를 마르크스도 불변자본이 아닌 가변자본의 탄력성에서 이윤이 생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본주의 국가라면 노동법 등이 정한 범위에서 인력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줘야 한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란봉투법안이 그 타당성을 떠나, 기존의 노동시장 구조를 더욱 경직화시킨다는 점에서 ‘경제성장’ 방침과는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증시 관련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코스피 5000시대’를 공언하며 한국 자본시장을 ‘부동산’에서 ‘금융’으로 큰 물줄기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정부는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으로 이전을 위한 규제 완화와 혜택 시그널이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최근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강화 방안이 발표되면서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분배의 형식적 공정’이라는 도그마에 빠진 정부라면 ‘금융활성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방침은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겠다는 말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추진 방안도 정부의 기조와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론은 “감세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유도하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법인세를 인상한다면, 이는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 재정 상황을 고려해 종전 법인세 수준으로 1% 올린다는 점에서 당장에 큰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시그널이다. 기업 활동을 장려한다면서 실제로는 세 부담을 늘리는 조치는 시장 참가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제전문가들은 “세금 정책이 주가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정부가 밝힌 증시 부양 목표와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도 정부의 메시지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정과 통합이라는 가치에서도 혼선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 통합을 강조해 왔지만, 야당과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특히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현재는 내란과의 전쟁 중”이고 “사람하고 악수한다”며 야당과의 악수조차 거부한 발언은 정치를 떠나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수진영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평론가들은 한국 정치에서 보수층을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체의 4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이 아닌가. 보수권에 속한 정치인들은 정 대표에 대해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사회 분열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정운영의 여러 지점에서 나타나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국민의 혼란을 키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국정운영이 선행돼야 한다.
진영 논리에 치우친 결정, 단기 성과에 급급한 발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상징적 조치들이 반복되면서 국정운영의 일관성과 장기적 비전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대통령의 메시지와 실무 부처의 실행, 여당 지도부의 태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국정의 추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 지금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진정으로 통합을 원한다면 상대를 내란 세력이라 규정하기보다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성장을 외친다면 불필요한 세출을 삭감하며 세 부담을 줄이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공정을 말한다면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정치적 구호와 실제 정책이 다른 방향으로 향할 때, 신뢰는 무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 설정과 이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정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그에 따른 일관된 정책과 언행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은 구호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