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정치의 본질은 갈등 조정, 타협, 협상 그리고 통합에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견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정치의 책무이지, 적을 만들어 분열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일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치, 특히 여권 내부에서는 여전히 ‘적과의 전쟁’을 국정운영의 기조로 삼으려는 조짐이 강하게 보이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적을 규정하고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삼는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적일 수 있다. 지지층의 응집을 이끌고, 중도층의 민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합과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었다. 국정을 안정시키고 민생을 돌보며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시기다. 그럼에도 선거를 앞둔 전장(戰場)에 있는 듯한 전투적 진영 논리가 아직까지도 여권의 기조처럼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야권에 대한 극단적 발언과 적대적 태도이다. 여당의 대표라면 집권 세력의 안정적 국정 수행을 위해 지원하며, 상대 세력을 포용해 첨예한 갈등과 꽉 막힌 대립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막후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상대 세력과의 대화는커녕 지금도 ‘사람이 아니니 악수해야 하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의 속 좁은 치기가 언제까지 갈지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또 다른 사례는 민주당 전현희 의원의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 주장이다. 필자가 처음 ‘특별재판부’ 추진 소식을 들었을 때는 외국의 해외토픽 뉴스인 줄 알았다. ‘특별재판부’는 혁명기처럼 헌법기관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제 기능을 못 할 정도의 위기 상황에서나 거론되는 용어다.
지금 집권 세력과 여당이 국정을 제대로 맡을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말인가. 그럼 집권 세력이 마음껏 구성해 사실상 진두지휘하고 있는 지금의 특검은 무엇인가. 멀쩡한 법원은 어느 나라 스키부대란 말인가. 국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낱 일개 정치세력의 정치적 욕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 추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헌정 유린’ 아닌가.
법원행정처가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경고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특별재판부’를 만들겠다는 발상이 결과적으로 집권 세력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라면 반헌법적‧반민주적 작태로서 비난받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훗날 법적인 책임을 지고 심판받아야 할 일이다.
여당 내 강경파가 주도하는 이러한 공세는 결국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실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대통령실은 최근 “내란 특판(특별재판부)은 논의한 적 없다”며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요구와 당내 반발 등을 고려해 분명한 반대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국정의 중심은 민생경제보다 정치투쟁에 쏠리고, 대통령실이 준비한 경제정책 드라이브도 힘을 잃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여권 내부의 전술적 계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내년 지방선거는 둘째치고 지금처럼 입법부 장악이라는 꽃구름을 계속 타고 싶은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멈추지 않는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효과적인 선거전략은 ‘적(敵)을 만들기’라고 한다. 적을 규정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기 위해 분노와 광기가 동원된다. 이는 단기적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의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분노를 야기하고 광기를 동원하는 정치가 반복될수록 사회 갈등은 심화되고, 국정의 정상 운영은 뒤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만드는 순간 기능을 잃는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자이자 당사자다. 윤석열 전 정부의 가당치 않은 계엄령 선포는 그 자체로 국민의힘의 명운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당의 국회의원을 진두지휘하며 계엄령을 막은 것 아닌가.
이런 맥락을 무시한 채 국민의힘을 내란 동조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치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집권 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순간, 전투적 언어를 버리고 협치의 언어를 택해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임을 천명했지만, 실제 국정 현장에서는 아직도 극단적 편 가르기와 전투적 진영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영을 초월해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적 과제를 추진하는 지도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당의 인내와 관용, 포용력이다.
작금의 여권 지도부 행태는 국정운영의 성과를 통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자신감과 실력이 부족한 탓에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내란’이라는 용어를 천년만년 우려먹을 못난 심보에 기인한 탓이 아닌가.
역사는 우리에게 ‘관용과 자제’의 교훈을 남겼다. 헌법재판소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판결에서 “정부와 국회는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여당은 수적 우위를 앞세운 일방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을 끊지 못한다면 이재명 정부는 또 다른 분열의 정권, 또 다른 갈등의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여당은 경제, 문화, 복지, 산업 더 나아가 분권화와 AI 혁명 등 산적한 숙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 ‘죽어버린 권력’이 좀비처럼 살아올 것처럼 호들갑 떨며 가짜 정치를 할 것인가.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더불어민주당 제1호 당원인 이재명 대통령이 끊든, 다른 누군가 끊든 반드시 끊어야 할 것은 ‘적을 만드는 정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