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경영학에서 성공 노하우를 습득하는 대표적 방법으로 ‘벤치마킹’이 있다. 이는 성공한 사업가의 경로와 방식을 분석해 자신에게 맞는 성공기법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경영, 특히 영업 분야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벤치마킹을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관점과 주장에 함몰되는 경향’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르며, 경영학에서는 앵커(Anchor, 닻)효과로 설명하기도 한다. 

앵커효과가 심해지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결과론적 사고방식에 빠지기 쉽다. 목표 달성을 위한 폭력적이거나 위압적인 방법도 미화되며 모든 판단 기준이 ‘결과’로 쏠린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조차 이런 사고에 빠지면 사회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을 도입해 정당한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 지도층, 그것도 관례상 국가 의전 서열 4위에 해당하는 여당 대표가 이런 결과론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신임 대표가 누구를 벤치마킹하고 있는지를 보면 그 흐름이 보인다. 그의 롤모델은 바로 현직 대통령 이재명이다. 이 대통령은 극렬 지지층을 앞세워 당내 주도권을 장악해 당대표를 거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되짚어보자. 2016년 말 “미국은 점령군이다” “일본은 군사적으로 한국의 적성국”이라고 단언했다. 2025년 대선 과정에서 해명성 발언이 나오긴 했지만, 그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돌발적 반미·반일 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인지도와 지지율을 높이려 한 의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 2017년 1월 “법대로 하면 재벌은 해체된다. 기득권과의 전쟁을 해야 공정사회가 온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성장이 중심이라고? 그것은 포퓰리즘이다. 경제 기회와 자원이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문제를 근본에 두고 재벌과 싸워야 한다”며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강한 충돌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지금은 과거 ‘재벌’이라고 좌표를 찍었던 대기업 총수들에게 투자와 협력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코스피 5000’을 내세우며 친시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거침없는 그의 ‘사이다 발언’은 정치권의 변두리에 있던 그를 최고 권력자로 끌어올렸지만 그 과정에 주변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다. 

만약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툰 국정운영과 12.3 계엄이라는 ‘정치적 자살’이 없었다면, 정치인 이재명이 지금처럼 탄탄대로를 걸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이 대통령 스스로도 이를 인식했을 것이다. 지난 5월 대선 과정에서 “국민이 편가름 당하고 세뇌된 결과 극단적으로 대립한다”며 분열을 우려했고 지난 7월 9일 종교계 행사에서는 “정부는 국민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인 이재명’을 벤치마킹한 정 대표의 행보는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 5일 “악수도 사람하고 하는 것… 그렇지도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까지 말하며 국민의힘 지도부와 의례적인 회동조차 갖지 않았다.

하지만 12.3 계엄 해제에는 국민의힘도 참여했으며 당시 한동훈 여당 대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노무현 정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조차 “본회의장에서 한동훈 대표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 편히 잤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같은 날 유튜브 방송에서 “국민의힘은 10번, 100번 해산감… 못할 것 없다”고 발언했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는 “내란 특검 결과에 따라 국민의힘 해산과 의원 제명 추진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여기에 “싸움은 내가 하겠다. 대통령은 일만 하시라”는 발언까지 더하며 당내 질서와 방향, 운영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이제 당대표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당과 정국을 움직이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이재명’의 화법은 적(敵)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적대적 공생관계로 ‘정치인 이재명’이 살아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정치’를 모르는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살’로 살아난 것이다.

정치란 본래 대화와 타협을 통한 통합이어야 한다. 이를 의식해 ‘정치인 이재명’은 대선후보 유세에서 반대 진영 주민들에게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호소했으며. 대통령 당선 뒤에는 “국민 통합은 대통령의 책임”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 대표의 행보는 이와 다른 궤도를 그리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 보수세력이 혼란과 내부 분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민주당에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정 대표는 예상되는 성과를 발판 삼아 당대표 재선에 도전하고 총선 공천권을 확보해 ‘정치인 이재명’에 버금가는 당내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대선 주자로 나설 기반까지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치 평론가들의 시각이다.

정 대표의 거친 발언은 누구도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극렬 당원들을 결집하고 당심의 구심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전 정부처럼 망조가 들지 않는 한, 정 대표의 편협한 벤치마킹은 오히려 자신과 자신의 정당을 위험에 봉착시킬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색채로 조화된 하나의 공동체로서 발전하기보다는, 후진적 정당정치로 인해 극한의 경멸스러운 언어와 증오가 가득 찬 사회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정치권의 자기반성적 모습을 기대하기가 이리도 어려운 것인가.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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