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땡전뉴스’라고 들어봤다면 만만치 않은 세월의 이력을 이겨낸 분들이다. 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철권시절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당시 공중파는 KBS와 MBC가 전부였다. 9시 뉴스는 저녁을 마치고 하루를 마감하며 온 가족이 보는 인기프로그램(?)이었다. 물론 다른 방송매체가 워낙 없었고 9시에는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를 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공중파 뉴스 방송을 봐야 했다.
9시 ‘땡’하는 소리와 함께 뉴스가 시작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 소식부터 나왔다. 물론 비판적인 논조는 없었고 정부의 보도지침에 따라 기사가 작성됐으며 데스크는 읽었을 뿐이다. 영혼 없는 뉴스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시청자인 국민은 비판적이었다. 특히 세금과 물가와 관련된 뉴스 멘트는 당시에도 풍자거리였다.
전두환 정부는 보도지침을 통해 세금을 올릴 때는 ‘조정’이 됐다고 하고 만에 하나라도 세금을 내리는 일이 있으면 ‘인하’라 표현하며 대대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풍자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2025년 세제개편안의 일환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4%에서 25%로 다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때 25%에서 24%로 인하했던 조치를 다시 되돌리는 조치이므로 이를 ‘조세의 정상화’라고 표현했다.
더 나아가 지난달 24일 대통령실의 강유정 대변인은 “법인세 인상이 아니라 조세 정상화 개념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설명하며 “조세 형평성과 세수 정상화를 회복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즉 정부는 이번 조치가 ‘법인세 인상’이 아니라 세수 정상화를 위한 회복이니 ‘증세’가 아닌 ‘조정’으로 봐야 한다는 현대판 보도지침을 내놓은 것이다. 그의 발언이 있고 나서 좌파 성향의 일부 뉴스쇼 진행자들은 ‘법인세 조정’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납세자 입장에서는 뭐라고 할까. 경제계는 현재 법인세 수준이 이미 OECD 평균보다 높다며 이번 세제개편안 추진을 계기로 “단기적인 기업 부담 증가와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결론만 말하면 정부는 법인세를 인상한다. 그리고 그 시그널은 경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수 부족이 원인이라면 세출예산 조정 검토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점이 팩트라면 팩트가 된다.
현대판 보도지침에 따라 ‘인상’을 ‘조정’이라고 보도한 좌파 일부 언론매체의 이중성에 조소(嘲笑)를 참기 힘들다.
1983년 8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물가 안정은 곧 정치와 사회의 안정, 선진국 발전의 토대”라고 강조하며 “물가를 잡아라!”고 지시했다.
물론 당시는 군사정권 때라서 ‘물가를 잡아라’는 말이 먹혀들었다. 시중 통화량을 봉쇄하고 예산을 동결하며 기업의 가격 인상과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국가 권력으로 억제했다. 그로 인해 오랜 기간 노동자의 임금은 동결됐다.
그러나 물가는 수요와 공급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수요가 증가하고 공급이 위축되면 물가는 오른다.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물가를 통제할 수 있다. 즉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해결된다.
당시에는 그 희생을 수많은 노동자가 감당해야 했다. 그렇기에 7년이라는 철권통치 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 입에서 ‘노동자 보호’라는 멘트는 한 마디도 나오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라는 회사에서 올해 들어 다섯 번째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직격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후진적인 산업재해를 영구적으로 추방해야 한다”며 “올해가 산재 사망 근절의 원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참으로 감동적인 말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경영자 형사처벌과 상장 기업의 ESG 평가 감점, 금융 대출 제한, 공공 입찰 제한 등을 병행함으로써 주가 하락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채찍을 적극 검토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사고는 경남 의령군 함양~울산 고속도로 의령 나들목 공사현장에서 발생했고, 발주처는 한국도로공사다. 그러니까 정부 발주공사다.
도로공사의 비용은 주로 국토교통부나 발주기관 등이 제시한 표준단가, 설계내역, 물가자료 등에 근거한다. 특히 ‘표준단가’가 결정적 기준인데, 이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건설기술진흥법’에 근거해 작성한 ‘공종별 단가 기준표’에 따른다.
업계는 표준품셈 항목이 실제 현장 여건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하소연이다. 특히 철근콘크리트, 도로확포장, 하수관거 등 핵심 공종에서 품 자체가 현장의 공수 투입량보다 과소하게 설정돼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 발주공사의 예정가격 대비 평균 낙찰률이 80% 수준인데도, 표준품셈은 100% 기준으로 산정돼 있어 현실과 너무 맞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발주공사에서 감당해야 할 비용을 민간 아파트 공사에서 충당할 수 있는 기형적 구조로 돼 있다는 점은 정부와 업계 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포스코이앤씨 근로자 산재 사망 사고의 근본원인을 찾아가 보면 ‘제대로 된 비용’을 치르지 않는 악덕 발주자인 정부가 있는 셈이다.
비현실적인 공사비 표준품셈을 조정하지 않고 기업 경영인 처벌만 앞세운다면 그 많은 정부 발주공사는 도대체 누가 맡을 것인가.
‘산재를 추방해라’는 이재명 정부는 포스코이앤씨 산재사고가 정부 발주공사라는 점을 인식조차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합리한 표준품셈부터 시정해야 한다. 공사장에 사활을 거는 기업의 구성원은 노동자만 있지 않다. 경영인도 사활을 건다. 정부부터 바꾸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