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선박 발주량 급감 추세
LNG 운반선 中 점유율 상승 중
중국·일본, M&A로 경쟁력 강화

트럼프 美 조선 재건 실행 요원
WSJ “조선 정책 오히려 후퇴해”
韓, 고부가가치 선박·방산 총력

삼섬중공입 거제조선소 이미지. (출처: 뉴시스)
삼섬중공입 거제조선소 이미지. (출처: 뉴시스)

 

핵심 요약

◆수주 급감, 中 ‘조선 공룡’ 탄생 코앞

전 세계 선박 발주가 위축되면서 한국 조선3사의 상반기 수주량이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오는 2028년께 ‘수주 공백’이 현실화 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돈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국영 중국선박그룹유한공사의 핵심 조선 자회사 2곳의 합병이 임박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밀려 고전하는 한국 조선 기업들에게 ‘조선 공룡’ 출범 소식은 또 다른 부담이다.

◆미국, 조선 사무국 인원 대폭 축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론했던 한미 조선 협업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산하에 신설된 조선 담당 사무국의 인력이 최근 몇 주에 걸쳐 기존 7명에서 2명으로 줄었고, 미국의 조선·해운 산업 재건을 지휘할 고위직과 해군 함정 건조를 총괄할 인사도 공석이다. 이 두 자리는 행정명령을 시행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HD현대미포가 건조해 인도한 1만 8000㎥급 LNG 벙커링선의 시운전 모습. (제공: HD현대)
HD현대미포가 건조해 인도한 1만 8000㎥급 LNG 벙커링선의 시운전 모습. (제공: HD현대)

[천지일보=이재빈 기자]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이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국내 조선업계에  ‘2028년 위기론’이 짙어지고 있다. 상반기 글로벌 발주량이 절반 이하로 급감한 데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수주 경쟁력이 약화해 현 수주 잔량이 소진되는 3~4년 뒤 다시 깊은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수주 멈추고, 中·日 쫓아오고

7일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6월 76척(105억 달러)을 수주해 전년 동기 대비 물량은 63%, 금액은 13% 줄었다. 한화오션의 수주량은 15척, 30억 7000만 달러로 각각 40% 이상 감소했고, 삼성중공업도 18척(26억 달러)에 그쳤다.

글로벌 발주 위축은 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누계 발주는 1938만 CGT(647척)로 전년 대비 54% 감소했으며, 6월 한 달만 놓고 보면 발주량이 81%나 급감했다.

그동안 한국 조선업의 ‘효자 품목’이던 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중국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중국 조선소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주 물량을 확대하며 한국 업체들의 고부가 선박 독점을 위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 수주잔량이 마무리되는 오는 2028년께 ‘수주 공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를 고려하지 않아 속단일 수 있지만, 올해 들어 발주량이 뚝 떨어졌다. 이미 많은 선박이 발주돼 추가로 늘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칭다오=AP/뉴시스] 중국의 주요 원유 수입 항구인 산둥항이 미국의 제재대상 유조선의 입항을 전면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6일 산둥성 칭다오항의 모습. 2025.01.09
[칭다오=AP/뉴시스] 산둥성 칭다오항. 2025.01.09

특히 중국에선 최근 국영 중국선박그룹유한공사(CSSC)의 핵심 조선 자회사 2곳의 합병이 임박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밀려 고전하는 한국 조선 기업들에게 ‘조선 공룡’ 출범 소식은 또 다른 부담이다.

예정대로 합병이 성사될 시 세계 최대 조선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1998년 설립된 중국선박은 군·민 조선 건조 및 수리, 해양공정 등의 사업을 하고 있고 산하에 장난조선, 와이가오차오조선, 중촨청시, 광촨국제 등 4개 기업이 있다. 중국중공은 2008년 설립돼 해양방위와 해양개발장비 등의 사업 부문을 갖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대형 조선소는 다롄조선, 우창조선, 베이하이조선 등이다.

지난 4일 종가 기준 중국선박, 중국중공 시각총액은 각각 1467억 위안(약 28조원), 1056억 위안(약 20조원)으로, 양사 합병 시 시가총액 규모는 50조원에 달한다. 자산 규모는 4000억 위안(76조원)으로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20조원)의 3배를 뛰어넘는다.

수주량 측면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선박은 지난해 154척, 1272만 4600DWT(순수화물 적재톤수)의 선박을 수주했다. 중국중공은 103척(1589만 9500DWT)을 수주했다. 이는 전 세계 조선소가 체결한 선박 주문량의 약 17%에 해당한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III 잠수함. (제공: 한화오션) ⓒ천지일보 2024.12.20.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III 잠수함. (제공: 한화오션) ⓒ천지일보 2024.12.20.

국내 조선사들은 최근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중국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격 경쟁력 외에는 뚜렷한 장점이 없었던 중국 조선사들이 국내 조선사들을 위협할 만한 건조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중국은 1004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수주, 점유율 52%를 달성했다. 우리나라(487만CGT)는 25%에 머물렀다.

미국이 지난 5월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들이 자국에 입항할 시 수수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글로벌 해운사들은 여전히 중국을 외면하지 못하고 있다. 가격이 저렴한 중국 선박을 보유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 조선업계도 인수·합병(M&A)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일본이 M&A과 1조엔(약 9조 4000억원) 규모 기금 조성 제안 등을 통해 조선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업계 1위 이마바리조선은 2위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지분을 기존 30%에서 60%로 늘려 자회사로 만들 예정이며, 집권 자민당 산하 특별위원회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1조엔 규모 민관 기금을 조성해 조선업 시설을 현대화하고, 정부가 국가 조선소를 건설해 민간 기업에 임대하는 안을 제안했다.

상호관세 발표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출처: 연합뉴스)
상호관세 발표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출처: 연합뉴스)

◆한미 조선 협업은 ‘지지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론했던 한미 조선 협업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한화오션 등 주요 기업들은 미국 업체들과 다방면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국가 간 논의에는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의 협업이 논의되면서 업계에선 기대감이 커진 바 있지만, 거론된 데에 비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조선 정책이 다른 정책과 충돌하면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산하에 신설된 조선 담당 사무국의 인력이 최근 몇 주에 걸쳐 기존 7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해당 부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행정명령을 통해 관계 부처에 지시한 조선·해운 산업 재건 계획의 입안과 시행을 감독하고 범정부 노력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NSC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지향점과 결이 다른 인사들에 대한 정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조선 사무국이 축소됐다. 사무국을 떠난 5명은 사무국에 발령된 기한이 끝났거나 다른 정부 부처로 이동했다고 WSJ은 설명했다.

미국 필리 조선소 전경. (제공: 한화오션) ⓒ천지일보 2024.08.27.
미국 필리 조선소 전경. (제공: 한화오션) ⓒ천지일보 2024.08.27.

미국의 조선·해운 산업 재건을 지휘할 고위직도 비어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운산업 발전을 담당하는 연방 해운청장에 해운사 머스크라인의 경영자 출신인 스테판 카멀을 지명했지만, 아직 상원 인준을 마치지 못했다.

해군 함정 건조를 총괄하는 해군 연구·개발·획득 차관보에는 아직 지명자도 없다.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해운 전문가 브렌트 새들러는 이 두 자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시행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석이 지속할 시 조선·해운 산업 재건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정책들은 조선·해운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개발처(USAID)를 없애면서 해외 식량 원조 프로그램을 중단했는데, 이 프로그램에 필요한 식량 운송은 미국 선적 상선을 운영하는 해운사들의 일감이었다. 이에 해운업 관계자 일부는 식량 원조를 재개하지 않으면 곧 상선 운영을 중단하고 선원들을 해고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해군성 존 필린 장관(왼쪽 세 번째)과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왼쪽 네 번째) 등 관계자들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정비 중인 ‘유콘’함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한화오션) ⓒ천지일보 2025.05.01.
미국 해군성 존 필린 장관(왼쪽 세 번째)과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왼쪽 네 번째) 등 관계자들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정비 중인 ‘유콘’함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한화오션) ⓒ천지일보 2025.05.01.

해군 함정 건조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해군 예산안은 함정 건조 예산을 전년도 370억 달러에서 약 210억 달러로 책정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해군 예산안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의제 포괄 법안)’에 포함된 국방 예산을 합치면 내년도 해군 함정 건조 예산은 전년도보다 21% 많은 474억 달러라는 입장이다.

한편 국내 조선 3사는 ▲미국의 LNG 수출 확대에 따른 LNG 운반선 추가 발주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부유식 LNG 설비(FLNG) 등 고부가 해양플랜트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암모니아·수소·원자력 등 대체 연료 추진선 개발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과의 기술 협력을 발판으로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진출도 추진해 함정 건조로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우리나라 조선업의 최대 강점인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 능력,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이점으로 가진 방위산업을 내세우는 게 최선”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필린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제공: HD현대) ⓒ천지일보 2025.05.01.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필린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제공: HD현대) ⓒ천지일보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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