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문화재 가운루·연수전 잿더미로

85세 노스님 소사 상태 발견돼 안타까움 커져

26일 오전 경북 의성군 고운사 가운루가 불에 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있다.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가운루는 전날 고운사를 덮친 산불에 타 전소됐다.(출처: 연합뉴스)
26일 오전 경북 의성군 고운사 가운루가 불에 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있다.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가운루는 전날 고운사를 덮친 산불에 타 전소됐다.(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경북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이 천년고찰과 국보급 문화재를 집어삼키고, 사찰을 지키던 스님의 목숨까지 앗아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경북 의성군 천년고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가 산불에 완전히 소실됐다. 전체 30개 동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건 9개 동이다.

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천년고찰인 고운사는 의성 등운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 신문왕 1년(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엔 높은 구름 속 명당이라 해 ‘고운(高雲)’이라 이름 지었으나, 200여년 후 신라 말 대문호 최치원이 자신의 호(孤雲)를 따 지금의 사찰 이름으로 바꿨다. 특히 가운루는 고려 말 공민왕이 노국공주를 그리워하며 현판을 남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었다.

의성의 고운사는 지장보살의 성지로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자네 고운사엔 다녀왔는가?”라고 묻는다는 구전이 내려올 정도로 유명했다. 이번 산불로 인해 ‘해동제일의 지장보살’로 불리던 사찰의 주요 전각들인 연수전, 가운루 등이 전소되면서 수백년간 이어온 불교 문화유산의 단절이라는 아픔을 남기고 있다.

고운사 주지 도륜스님은 KBS 대구총국과의 인터뷰에서 “천년고찰을 이어왔는데 우리 대에서 부처님 전각을 잃어버리게 돼 정말 죄송하다”며 목멘 목소리로 비통함을 표했다. 스님은 “스님들과 유물을 옮기던 중 ‘인명 피해가 생기면 안 되니 철수하라’는 지시에 따라 끝까지 남아있다가 절을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행히 고운사의 보물 석조여래좌상은 스님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구해졌다. 신라 말기(9세기) 제작된 높이 2m의 불상은 에어캡과 포목으로 여러 겹 감싸인 채 약 135㎞ 떨어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로 안전하게 이송됐다.

경북 의성에서 북동부권으로 뻗친 산불은 영양군 작은 마을의 상징과도 같았던 법성사를 덮쳤다. 불에 탄 사찰의 잔해에서는 이곳의 주지 선정스님(85)이 소사 상태로 발견됐다. 2002년부터 법성사 주지로 있던 선정스님은 주지가 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수행 공부를 해오며 평소 마을의 큰 어른으로 존경받던 인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진득 화매1리 이장은 “오래전부터 혼자 사찰을 지키셨다”며 “부처 그 자체였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 25일 오후 순식간에 불씨가 산을 타고 넘어와 5분 만에 동네 전체가 불바다가 됐다면서 스님을 대피시킬 상황이 안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찰이 산속에 있어서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고 소방관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선정스님은 혼자 사는 분들을 재워주거나 음식을 나눠주는 등 늘 남에게 베풀었던 자비로운 성품이었다.  한 주민은 “끝까지 사찰에 남아 지키다 돌아가신 것 같다”며 “연세가 있어서 거동도 불편하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남한테 손해를 끼치는 분이 아니었다”며 “절에 행사가 끝나면 주민들을 모아서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했던 기억이 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27일 국가유산청의 산불 관련 국가유산 피해 세부 현황(오전 11시 기준)에 따르면 경북 안동에서 용담사 무량전(경상북도 문화유산)과 용담사 금정암 화엄강당(경상북도 문화유산), 경북 의성에서 관덕동 석조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등 3건이 추가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산불 피해 예방을 위해 안동 봉정사 등 사찰에 있는 유물 3건 1566점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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