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법은 우리의 약속이다. 법은 우리가 지키기로 약속한 규범으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법을 오·남용하면 질서가 파괴되고, 악용하면 흉기가 돼 공동체를 붕괴시킨다. 근대 국가는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형성한 공동체이다. 국가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끼리 계약을 맺어 구성된 법적 존재이다. 이렇게 근대 시민사회는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공존하려는 질서를 구축하고 서로 신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계몽주의가 등장했다. 인간을 사회적 구성원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 것은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동물로서 자신에 대한 자각이었다. 이렇게 계몽주의는 근대 시민사회를 형성·발전시켰다.

근대 국가는 사회계약론과 이를 이해시키기 위한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발전했다. 자유로운 신분을 가진 시민이 국가권력의 주체로 나서게 되면서 국민주권이 자리를 잡게 됐다. 이런 근대 이념과 사상은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으로 규정돼 규범화돼 있다. 헌법 제1조는 자유민주주의, 공화주의 및 국민주권주의를 명문화해 대한민국의 주체와 정치체제를 밝히고 있다.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발전하게 된 것은 자유인으로서 시민이 자각할 수 있게 한 계몽주의가 큰 역할을 했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사회질서의 축인 법이었다. 근대법은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 사고를 응축해 만들어진 규범이다. 이런 법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서로 신뢰하고 이를 지키려는 의지와 약속이 필요하다. 그래서 법은 이를 지키려는 약속을 통해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근대법은 발전 과정에서 법에 친숙하지 못한 정치권력에 의해 오·남용되기도 했고 심지어 악용됨으로써 신뢰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사회가 발전하고 무력이나 폭력으로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법은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 규범으로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법은 존재만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의 내용도 정의롭고 정당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알게 됐다.

인간의 이성이 발전하면서 악법도 법이라던 문언은 악법은 법이 아니고 법은 정당해야만 효력을 갖고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법을 준수한다는 것은 정당한 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법이 정당한지는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우리나라 헌법도 위헌법률심판이란 헌법재판을 통해 국가 법체계에서 정점에 있는 효력을 갖는다.

법이 우리의 약속으로 존재하려면 정당성이 전제돼야 하고, 그 법이 적법하게 적용돼야 한다. 우리가 법을 지킨다는 것은 그 법이 합헌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법을 위반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의 법질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유지된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합헌적인 법을 만들어야 하고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몇 달간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국가공권력이 위법을 자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정치권의 행태는 법치주의가 왜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대통령에 대한 체포·구속에서 자행된 위법, 법원의 위법,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위법 등 국가공권력에 의한 위법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법치주의를 지켜야 할 국가권력이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면 그 국가는 불법국가가 된다. 국가권력이 정의롭지 못한 법을 만들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법을 행사하는 것은 위법을 넘어 법을 부정하는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택의 기로에 있다. 불법국가로 갈 것인지 아니면 법치국가로 남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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