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DB
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DB

일제 강점기, 해방이라는 두 글자가 우리 민족에게 예고 없이 찾아왔다. 당시 소련군과 미군의 점령 속에서 친탁과 반탁 등 칼바람 부는 세월은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북방에서 밀고 오는 공산 사회주의와 남방에서 밀려 들어온 자유민주주의의 거센 바람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시절은 그리 오래전 얘기만은 아니다.

정확한 실체도 답도 배워 본 적도 없는 우리 선배들은 좌와 우,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야만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던가.

타락한 시대는 타락한 방법으로 고칠 수밖에 없던 시절이 분명 우리에겐 존재했다.

1966년 그 시절 김두한은 정기국회에 참석했고, 타락한 시대 국무위원들을 향해 “똥이나 처먹어라 이 새끼들아”라고 외친 후 파란의 정치 인생을 접고 만다. 이것이 그 유명한 김두한의 국회 똥물 투척 사건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의 나라며 행정·국회(입법)·사법 등 삼권분립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어느 때엔 불법으로 통치권을 거머쥔 통치자의 무법천지가 있었고, 오늘날은 행정부의 무능과 입법부의 독주와 사법부의 편향 등 삼권분립의 존재가치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때 자유당 시절의 똥물 투척 기행이 도리어 그리운 것은 유독 필자만의 생각일까.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핵심 요체인 삼권이 무능과 독주, 편향 등으로 자유당 시절을 방불케 하고 있으니 부인할 자 아무도 없으리라.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국론분열은, 자유당 시절은 물론 헌정사상 이만했던 적은 없었으니 가히 국론분열의 끝판왕이라 할 것이다. 오늘 이 시국은 또 다른 타락한 시대에 요구되는 타락한 방법 즉 “똥이나 처먹어라 이 새끼들아”와 같은 현대판 김두한의 똥물 투척 사건이 그립단 얘기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부패와 사상적 타락의 정도는 그 심각성이 이미 도를 넘었으며, 특정 사람이나 지도자의 능력으로는 해결 불능상태가 됐음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지경에 와 있다. 이때 그 주체와 대상은 바뀌었지만 현대판 똥물 투척 사건 곧 “야 이 새끼들아 똥이나 쳐 먹어라”고 누군가가 누구를 향해 똥바가지를 던졌으니 곧 ‘12.3 계엄령’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현대판 ‘똥물 투척 사건(계엄령)’의 주체와 상대는 밝혀진 셈이니 곧 윤석열 대통령은 김두한 역이며 당시 무능했던 국무위원의 역은 무능한 국무위원과 입법독주를 통해 국정을 마비시킨 국회와 사상적 편향에 취해 ‘STS(STOP THE STEAL)’ 곧 부정선거 의심의 대상이 된 사법부(선관위 포함)가 분명해 보인다.

이 가운데서도 부정선거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그 뿌리가 뽑혀 나갈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암적 존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자유국가에서 가장 위험시하며 척결의 대상으로 꼽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21대와 22대 총선은 부정선거였으며, 그 결과로 현재 다수당의 횡포를 낳았고, 그 입법독주로 인해 삼권분립의 근간이 무너져 국가 행정은 마비되고 말았다는 데 국민들이 동의하는 분위기다.

자유민주주의 선거 곧 국민투표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만큼 의미와 가치가 괄목할 만하다. 한 표 한 표 속에 담긴 국민 개개인의 양심을 도둑질해 위법하고 불법한 결과를 가져왔다면 반드시 발본색원(拔本塞源)해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엄청난 부정을 캐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바로 계엄령이었다면, 이를 거부하기보단 왠지 머리가 숙연해져야 할 것이다. 숙연해야 할 이유는 이 엄청난 커넥션 즉, 국회와 사법부라는 이 거대한 카르텔과의 대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0.73%(약 24만표) 차로 국민이 뽑은 윤 대통령은 자신의 지위를 걸었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지막 통치 수단인 계엄령 카드를 꺼냈으니, 정의와 대의를 위해 죽음을 택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계엄, 이 계엄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정치 지도자들은 그 단어가 지닌 부정적 요소를 앞세워 선전과 선동으로 무기 삼았고, 국민들은 조건 반사적으로 계엄이란 단어에 대한 혐오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순식간에 대한민국은 풍전등화(風前燈火)가 됐다. 나아가 반사이익에 혈안이 된 하이에나들은 나라와 백성과 미래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불법(범죄)을 덮고 정권야욕을 위해 속도를 낼 뿐이다.

그래도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우리를 위로하고 있으며 희망을 주고 있다면 분명 계엄은 엄청난 기적을 품고 있었다. 고담(古談)에 밝혀지지 않을 것이 없단 말이 있듯이, 진실은 시간이 걸릴지언정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처럼 지금 우리 눈앞에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하나 감춰지고 묻혀있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생각과 정신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나라의 미래인 청년과 아이들이 깨어나고 살아나고 희망을 노래하는 기적을 가져왔으니, 정녕 금번 계엄령은 국민 계몽(啓蒙)을 가져온 ‘신(神)의 한 수’였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12.3 계엄령 선포는 이 시대를 깨우고 젊은이들을 깨우고 이상(理想)을 심어준 상록수(常綠樹)가 됐다고 훗날 세인들은 말하게 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