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맞으며 8월 15일 광복절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69년 전에 빛의 회복 즉, 광복(光復)이 있었다는 것은 먼저 암흑의 세월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왜 암흑의 기간이 있어야만 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광복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 날의 그 광복이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었는지 고민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저 광복이요 광복절이 아니라, 이 광복이 주는 참된 의미를 아는 것이 진정한 광복절을 기념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인즉, 69년 전 광복이 있게 한 36년 암흑의 기간 이전에 이미 이 땅에는 암흑의 전조가 있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당리당략으로 인한 정쟁이 이어져 왔다.

요즘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명량(鳴梁)’이 있다. 이 영화가 바로 417년 전 이 땅에 암흑이 찾아오게 할 뻔한 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며, 나아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위난을 극복해 암흑의 기간을 면할 수 있었던 역사를 영화화한 논픽션이다. 왜 명량은 그렇게 많은 국민을 열광하게 할까. 그것은 명량을 통해 이 시대를 보며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빛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시대에 조정을 향해서도, 적군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두려움 하나 없이 정의와 진실로 맞설 수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그 기개에 국민은 분명 공감하고 열광하며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마 그 시대를 분별했고,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소명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정신이 바로 답이다.

나라가 위난에 처해도 오로지 당쟁에만 여념이 없던 그때가 어찌 오늘과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흥행 가도는 우연도 횡재도 아닌 이 시대로 인한 반대급부(反對給付)다. 분명 이 시대를 향해 뭔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과연 뭐란 말인가. 앞서 언급한 광복과 함께 진단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리더십의 부재로 총체적 불신이 판을 치는 이때, 명량은 리더십의 부재와 그 갈급함에 대한 해갈이다. 숨을 쉴 수 없으리만큼 답답했던 마음에 내린 단비와 같다. 그렇다면 진정한 리더십은 뭔가. 그것은 피아(彼我)를 막론하고 불의와 맞설 수 있는 두려움 없는 용기며,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용기다. 나아가 하늘이 주는 지혜를 겸비한 리더십을 명량은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일본의 침략이 있어서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하여금 침략하게 한 당쟁과 권력과 명예와 부를 좇는 부패와 타락이 있었기에 일본이 침략할 수 있었음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나라와 민족보다 자신과 권세와 명예와 돈을 더 사랑한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었음을 역사는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 ‘관(官)피아’ ‘법(法)피아’ ‘종(宗)피아’ 등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는 온 사회와 나라가 그야말로 거짓과 부정의 세상 즉, 부정부패의 산실이었음이 온 천하에 드러나고야 만 것이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외침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라는 선각자의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이제 생각해 볼 것은 광복 후 왜 다시 한반도가 갈라져야만 했는가. 또 왜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참상이 있어야만 했는가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이 시대야말로 또다시 찾아온 암흑의 기간이었음을 제발 인식해야 한다. 결국, 이같이 소경과 귀머거리가 된 암흑의 세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진실이 밝혀질 때이며, 이때 비로소 광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을 향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이 됐다고 한다. 8월 10일 일본 측이 자신들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미영소 3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전략 정책단의 본 스틸, 딘 러스크(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 역임), 매코맥 등 3명의 소속 대령에 의해 한반도에 38도선이 그어진다. 그리고 이북은 소련군이, 이남은 미군이 분할 통치하는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불과 30분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기록은 증언하고 있다. 이로써 일본의 분할 대신 한반도의 분할을 조건으로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항복을 접수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그 날 광복의 진실이요 오늘날 한반도의 허리가 두 동강 난 배경이다. 엄청나고도 어이없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어찌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분단 문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3명의 미 육군 대령에 의해 처리돼야 했을까.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그 날의 광복은 진정한 광복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진정한 광복인 참 광복이 남아 있어 반드시 찾아올 것임을 예고한 표면적 광복일 뿐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오늘 우리가 광복절을 기념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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