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녘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가을바람에 일렁이며 추수를 기다린다. 만추(晩秋)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농부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빠진 이유는 혹여 익은 곡식을 결실하지 못할까 염려해서다.

이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계절과 그 계절이 주는 혜택과 늘 함께하면서, 세상의 매너리즘에 젖어, 또 다른 차원의 진정한 계절과 추수의 때, 나아가 계절이 갖는 참된 이치와 추수의 이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교의 사서삼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 즉, 역학(易學)에서도 도래한 이 시대를 일컬어 우주의 가을이 왔다고 말한다. 이는 저 들녘에 누렇게 익은 곡식만 추수하는 게 아니라, 우주의 섭리 가운데 진정 추수하고 또 추수돼 가야 하는 익은 곡식의 실체가 따로 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추수 때 추수돼 가야 할 곡식이 추수돼 가지 못한다면 밭에 버려져 썩어지고 말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버려지는 곡식만이 아니다. 결실해 추수할 것을 생각하며 이른 봄 이른 아침부터 기쁨으로 씨를 뿌린 농부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러하듯이 우주의 섭리 가운데 있어지는 이 때 즉, 이른 봄 씨 뿌린 밭에서 추수가 끝나면 그 밭의 사명도 끝이 나듯이, 한 시대는 끝이 나고 새로운 한 시대가 오는 우주의 일주 해 즉,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때를 분별해야 한다.

역학뿐만이 아니다. 기독교 경전인 성서에도 추수 때가 있음을 알리고 있으니, 세상의 추수만 있는 게 아니라 대우주의 섭리를 좇아 또 다른 차원의 영적 추수 즉, 종교적 차원의 때와 추수가 있음을 알리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세상 밭의 이치와 같이 영적 추수 때 버려둠을 당하는 일과 데려감을 당하는 일이 함께 있을 것도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영적 추수의 실체는 뭐겠는가. 세상 농부가 이른 봄에 기쁨으로 뿌린 씨가 세상의 콩씨 팥씨라면, 그 씨가 뿌려진 곳은 세상의 밭일 게다. 하지만 영적 농부가 뿌린 씨는 신(神)의 뜻이 담긴 글 즉,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의 씨가 뿌려진 곳은 세상 밭이 아닌 영적 밭 즉, 사람의 마음(심전)이며 나아가 사람들이 모인 교회다. 또 그 씨를 뿌린 이가 2000년 전 예수라면 밭은 예수님의 밭 즉, 예수교회가 틀림이 없다.

오늘날이 영적 추수의 때가 틀림없다면 작게는 씨 뿌린 밭인 예수교회요 크게는 교회를 포함한 모든 종교세계로서 반드시 곳간으로 추수돼 가야만 한다. 이처럼 추수되어 가야 할 때 고집을 부리거나 안일한 마음으로 추수돼 가지 않는다면 우주의 섭리와 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가 되어 심판이 있을 것을 모든 경서는 미리 알려 왔던 것이다. 종교는 반드시 경서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 경서는 신의 글 즉, 추수할 때와 추수되어 가야 할 곳을 알리는 약속과 예언이 담긴 신서(神書)다.

이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주의 가을을 맞은 이 때, 종교 비종교를 떠나 인류가 찾아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다. 유불선 모든 종교를 포함해 신의 뜻 가운데 있어진 모든 구전(口傳)문화를 통해서도 한결같이 인류가 찾아야 할 피난처요 구원의 처소가 있음을 알려 왔다. 그렇다면 구원의 처소는 어디인가. 그곳은 십자가의 도로 싸워 이긴 이긴자가 있는 곳이며, 때가 되기까지 비밀이었다. 이제 때가 되어 하늘의 뜻을 받은 한 사람에 의해 종교(宗敎)라는 과정을 통해 알려지고 있으니, ‘弓弓乙乙之間에 十勝地’다. 다시 말해 모든 종교가 말해왔듯이 십자가의 도 즉, 예수의 피로 싸워 이긴 이긴자가 있는 곳임을 의미한다. 그 어떤 장소를 말하기 이전에 이긴자 즉, 하늘이 택한 목자(天擇之人)를 말하고 있으니 비산비야(非山非野)가 되고, 나아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의 비밀이 열리는 이때가 바로 우주의 가을이며 부패한 종교를 끝내고 새로운 정신세계를 열어가는 새 시대가 왔음을 이 가을에 세상의 이치와 함께 깨닫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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