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ESG.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5.20
한국형 ESG.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5.20

재계의 ‘ESG열풍’ 현재 진행형

기업서 바라보는 ‘중대재해법’

다단계 하청 구조서 오는 폐단

“ESG위해 다단계하청 없애야”

“탄력적 고용과 복지 마련돼야”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최근 재계의 핫 키워드는 단연 ‘ESG’다. 재무지표 이외의 것에도 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기업들이 하청업체와의 불공정 거래로 징계를 받는 등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노동계에선 기업의 갑질을 비난하고, 다단계 하청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에 대해서도 기업과 노조 측에서 서로 반응이 엇갈리는 가운데 그 의견차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업의 ESG는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 중대재해법은 직접고용의 형태가 아닌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원청인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얼핏 ‘사회적 책임’이라는 맥락에서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싶지만, 기업들이 ESG와 중대재해법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ESG’ 열풍… 한국형 ESG?

국내 기업들은 ESG 경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업들은 서로 앞다퉈 ESG에 관한 상품을 쏟아내고, 홍보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에서도 ESG 관련 회의기구를 연이어 발족하고 있다. 경제단체에서 ESG 기구를 발족했다는 것은 각 단체를 구성하는 가입 기업들이 ESG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또 재계의 주요 관심사가 ESG임을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이기도 하다.

ESG경영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에도 기업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경영철학이다. 국내 기업들은 특히 ‘E’에 맞춰 탄소중립, 기후변화, 리사이클링 등에 대한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정부의 ‘탄소 제로(0)’ 정책과 맞물려 탄소 줄이기 경쟁이 뜨겁다. SK건설은 탄소 배출이 없는 수소연료 전지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고, 두산중공업은 친환경 수소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전기차 관련 사업에도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포스코, LG에너지솔루션 등이 배터리와 관련된 사업에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각 매체에서 기업들의 ‘친환경 행보’에 대해서 기사들이 연이어 나오는 가운데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ESG는 ‘S’와 ‘G’도 있다는 것이다.

강부길 한국안전보건기술원 대표는 “한국에는 ESG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립된 곳이 없다”며 “현재 국내의 ESG의 대부분은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절약, 태양광 등 환경 분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쉽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환경도 지배구조도 중요하지만 돈을 벌면서 사람이 사업장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막기위한 ‘사회적 책임의식(S)’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ESG. ⓒ천지일보 2021.4.5
ESG. ⓒ천지일보 2021.4.5

◆ESG ‘S’, 노동자 아닌 고객만?

ESG의 ‘S’는 사회적 책임을 의미한다. 기업에서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기업의 물건을 사는 고객 등을 대상으로 대의적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실제로 많은 기부와 봉사를 한다.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일부 기업에서는 급여의 1%를 공제해 지역사회에 기부하기도 하고, 한화에선 임직원들이 가족들과 함께 팝업북을 제작해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다만 기업이 책임져야 할 사회적 대상이 시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노동자 복지를 통해 ESG경영을 실현한다는 보도가 드문 것은 한번 짚어볼 만하다.

◆중대재해법 두고 엇갈린 의견

노동계의 최고 이슈 중 하나는 ‘중대재해법’이다.

중대재해법은 산업현장에서 작업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을 발주한 원청의 CEO·대표 등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업에서 주도하는 산업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도 원청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즉 중대재해법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범위를 직접 고용하는 직원들 외에도 하청업체까지 확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에서 ‘당연히 지정됐어야 했을 상식적인 법안’이라고 환호하는 반면, 일부 기업 관계자들은 책임질 수 없는 범위까지 책임져야 하는 ‘지킬 수 없는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직접고용 시 발생하는 비용부담 등 때문에 하청업체를 고용하는 기업들로선 중대재해법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안일 수 있다. 산업 분야가 세분된 오늘날 한정된 비용으로 같은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하청을 고용하겠다는 기업의 입장은 언뜻 상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공공운수노조 사회서비스노조. 전국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를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4일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철폐, 생활임금 지급, 정년연장 합의 이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국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를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철폐, 생활임금 지급, 정년연장 합의 이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철도노조의 집단시위 역시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한 폐단 중 하나다. ⓒ천지일보BD

◆문제는 ‘기형적 다단계 하청’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이 같은 ‘작업 외주화’를 통해 발생하는 ‘기형적인 하청구조’를 지적한다. 기업들이 작업을 하청에 맡기면, 그 하청이 다른 하청에 맡기는 식으로 ‘다단계 하청’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기업에서 하청에 경쟁을 붙이거나, 중간 단계 하청이 마진을 많이 남길수록 낮은 단계 하청 실무자들이 받는 보수가 줄고, 하청업체 관계자들은 비용을 문제로 안전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다.

이를 두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기업들의 입장이다. 하청업체들이 필요에 따라 하위 하청을 두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막을만한 법적 근거도 없다.

이런 가운데 정의당을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고,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만 중대재해법에도 다단계 하청을 막을 법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진 않다. 다만 이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처벌 대상자와 수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다단계 하청구조는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구조이자 일종의 착취 시스템”이라며 “대기업이 하청을 직접고용의 형태로 전환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는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사 합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노사 합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SG위해 산업구조 개편해야”

결국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중대재해법은 사실상 다단계 하청 구조에 대한 개선 없이 처벌조항만 늘려 전문가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또 산업구조가 변하지 않으니 노동자들의 안전과 처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긴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강부길 대표는 “ESG의 ‘S’는 노동, 안전, 건강, 재물책임 등 중대재해법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며 “현대사회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에 대한 평가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김대종 교수도 “ESG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노동자들의 생명”이라면서 “노동자들이 돈을 벌러 직장에 출근했다가 목숨을 잃는 구조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영국도 다단계하청으로 인한 책임 전가 문제 등으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한 국가 중 하나였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했고, 이로써 사망자가 1/10 가까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청과 하청 모두가 안전에 예산을 투자해야 하며, 정부도 처벌법을 만들어 기업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함께 예산을 투자하는 등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다단계 하청 구조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비탄력적인 고용구조’를 손꼽았다. 노동계에서 직접고용을 원하지만, 일단 고용하게 되면 해고가 어려워 기업에선 직접고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다만 해고가 쉬운 탄력적 고용이 이뤄진다 해도, 해고된 노동자에 대한 충분한 복지가 마련돼야 하는 만큼 기업과 노동계,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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