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덕 한국농촌희망연구원장
미국의 투자가 워런 버핏은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얻지만 숭배하면 그것이 주인이 된다”라고 했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돈이다. 돈의 본원적인 기능은 가치 척도(Measure of Value), 교환의 수단(Medium of Exchange), 가치 저장 수단(Store of Value)이다. 초창기 상품이나 서비스를 맞바꾸는 방법은 물물교환이었다. 차츰 조개껍데기, 금, 은 등을 교환을 위한 화폐로 사용하다가, 휴대와 운반의 불편함 등으로 태환화폐(兌換貨幣, 본위화폐로의 교환을 보증하는 공인된 어음 형태의 화폐)를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최근의 태환화폐 사례는 브레턴우즈 협정(Bretton Woods System)이다. 이 협정은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를 기반으로 했다. 금 1온스당 미국 달러 35달러로 가치를 고정해(태환 보장), 달러가 사실상 금과 동일하게 취급되도록 했다. 이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1년까지 약 27년간 유지됐지만, 미국의 베트남 전쟁과 과도한 재정 지출로 달러 공급량이 급증하면서, 미국이 약속했던 달러의 금 태환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의 금 태환을 일방적으로 중지하면서(이른바 닉슨 쇼크), 브레턴우즈 체제는 공식적으로 붕괴됐다.
한편 화폐(돈)는 기본적으로 발행 기관의 신용과 사회적 합의(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만약 신뢰가 무너지면, 해당 화폐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유통될 수 없다. 미국의 달러 공급량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대규모 양적 완화와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로 인해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급증했지만,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견고했다. 연준은 미국 의회로부터 통화 정책의 독립성을 부여받아 달러의 발행량을 조절하고, 경기 과열 또는 침체 시, 기준금리 인상 또는 인하, 양적 완화 또는 긴축 등의 정책을 통해 달러의 유동성을 조절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 등 연준의 통화 정책 중립성 훼손 우려와 더불어, 지속적인 달러 공급량 증가는 돈의 본원적 기능인 가치 척도와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입지를 위협하며, 현금의 실질 구매력은 지속적으로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달러 가치 하락이라는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고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금과 같은 실물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 금 시세의 등락은 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달러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금은 수천년 동안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정받아 왔다. 최근에는 금 채굴량 정점(Peak Gold)에 대한 전망과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 확대 움직임, 그리고 중국, 인도 등 브릭스 국가들이 단순히 안전 자산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금 보유량을 늘림에 따라 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달러와 금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달러 약세가 예상될 때, 가장 안전한 자산인 달러의 공신력이 약해진다고 판단해 금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화폐의 실질 구매력이 하락하므로, 명목 가치가 고정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것보다 인플레이션을 헷징(Hedging) 할 수 있는 실물 자산 투자가 유효하다.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 돈을 좋은 하인으로 활용하기 위한 구매력 방어와 장기적인 실질 가치 유지를 위한 전략을 고심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