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덕 한국농촌희망연구원장

1965년 프랑스, 47세의 젊은 변호사, 앙드레 프랑수아 라프레는 90세의 잔 칼망 할머니와 특별한 계약을 맺는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매달 2500프랑의 연금을 지불하고 사망하면 소유권을 이전받는 프랑스 특유의 부동산 거래 방식인 비아제(Viager) 계약을 맺었다. 당시 90세였던 잔 칼망의 나이를 감안하면 라프레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계약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라프레는 30년 동안 꾸준히 돈을 지불했지만, 결국 1995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먼저 떠나면서, 아파트 가치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도 소유권을 얻지 못했다. 일명 장수리스크에 노출된 셈이다. 심지어 그의 미망인은 계약에 따라 잔 칼망 할머니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금을 계속 지불해야만 했다. 

위 이야기는 오늘날의 주택연금을 연상케 한다. 한국주택금융공사(공사)의 주택연금은 주택 소유자가 집을 담보로 제공하고, 평생(종신) 혹은 약정 기간 동안 연금을 받는 제도다. 

연금액이 집값을 초과하더라고 약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지급하며, 가입자의 사망 후 주택을 처분한 가격이 그동안 지급된 연금 총액과 이자를 합산한 금액보다 낮더라도, 그 차액에 대해 상속인에게 추가로 청구하지 않는 비소구(Non-Recourse) 방식이다. 따라서 공사 입장에서는 기대수명, 향후 주택 가격 변동, 그리고 금리 산정 등 보다 정교한 금융공학적 모델링이 요구된다.

최근 감사원은 주택연금액 산정 시 부동산의 실거래가 반영이 미흡하고, 주택처분가율 산정, 주택연금 이자율 산정 방식 그리고 보증료 부과의 불합리 등 가입자에게 일부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개선 대책 마련을 통보했다. 주요 지적 항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주택연금의 월 연금액 산정 시 적용하는 주택가격상승률에 ‘전국 주택가격지수’만을 반영하고, 가입자의 담보주택과 유사성이 높은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주택연금은 가입자가 오래 살수록 지급해야 할 총 연금액이 많아지므로, 젊은 나이에 가입할수록 월 연금액이 줄어들게 설계돼 있다. 60세 미만 가입자의 경우, 장기 지급 리스크를 고려해 이미 월 연금액을 줄이고도 주택처분가율을 임의로 더 낮게 적용해 ‘이중 감액’이 발생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리고 연금산정이자율 산정방식과 관련해 실제 시장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CD 금리를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공사의 불합리한 기준으로 주택연금 가입자의 연금액이 줄었고, 금리 등 불리한 기준이 적용됐다고 보고 개선을 요구했다.

2025년 6월 기준, 주택연금 누적 가입자는 14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금액이 집값을 넘어서더라도 약정 기간 동안은 지속적으로 받는다. 따라서 주택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집값의 하락 리스크와 장수리스크를 감안해 합리적인 지급률 산정과 적정한 연금산정 금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사원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인구 구조를 감안하면 주택 가격이 상승할지 하락할지, 주택연금 가입자가 얼마나 오래 살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잔 칼망 할머니의 경우처럼 집값을 초과하는 위험(Crossover Risk)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한편 공사는 감사원의 지적사항을 반영해 주택연금 계리 모형 전반을 재설계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대로 수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향후 가입자의 월 연금액이 증가하고, 이자율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는 공공성과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이다. 공사는 주택연금 산정의 합리적 기준 설정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고 가입자에게는 최대한의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난제(難題)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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