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시사평론가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인천 용현시장을 깜짝 방문했다. 인천 송도에서 있었던 바이오산업 관련 토론회를 마치고 가는 길에 물가는 어떤지, 장사는 잘되는지 그리고 소비쿠폰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역시 내수 경기는 한목소리로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소비쿠폰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잠시나마 소비가 회복되는 듯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에 이 대통령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얘기다. 골목 시장이 죽고 소상공인들이 몰락하고 있는데 어떻게 경제가 살아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내수 시장은 이미 바닥권이다. 특히 지역 경제는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아니라 중견기업, 대기업도 위기를 맞은 곳이 수두룩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전망조차 어렵다. 이런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 해법 또한 답답할 따름이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2026년 내년도 예산(총지출)을 728조원으로 편성했다. 올해보다 무려 8.1%, 액수로는 55조원이 늘었다. 규모뿐만 아니라 증가 폭도 역대 최대 수준이다. 늘어난 재원의 대부분은 인공지능(AI)과 연구개발(R&D), 혁신경제 선도 사업 등에 집중됐다. 미래 성장 동력을 끌어 올리겠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재정의 적극적 대응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빚만 늘어났다. 내년 말 국가채무는 1415조 2천억원으로 올해보다 141조 8천억원이나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1.6%에 이른다. 역대 최고 수준이며 50%를 넘어선 것도 사상 처음이다. 그럼에도 당장은 재정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문제는 그 씨앗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빌리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씨앗을 뿌린 만큼 결실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 국가든, 가계든 빚더미에 허덕일 경우 새로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율이라도 낮으면 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율을 내리기도 어렵다.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을 더 끌어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부동산 가격 폭등이 재현이라도 된다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다. 지금도 0%대 경제성장률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금리 정책은 쉬 손대기조차 어렵다. 가계 부채가 한국경제의 폭탄이 될 것이라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3일 ‘제3차 장기재정전망(2025~2065)’을 발표했다. 향후 40년의 재정 상황을 추계하는 장기 재정 전망이다. 이는 미래의 재정 위험을 미리 점검하기 위해 5년에 한 번씩 시행한다. 결론은 이대로 가면 몰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입은 제자리걸음인데 지출이 크게 늘어 그 차이가 5배로 벌어졌다. 당연히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폭증해 내년엔 50%를 넘고 2065년에는 최대 173.4%까지 치솟으리라는 것이 정부 전망이다.

이대로 현실화하면 정부의 경제정책 자체가 작동되기 어렵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공멸한다는 얘기다. 국가채무가 폭증한다면 가계부채는 또 어떻겠는가. 부의 양극화가 극대화되면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민생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질 것이다. 자칫 정부의 존재 이유마저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설마 하면 안 된다. 5년 전 정부의 장기재정전망보다 지금은 더 나빠졌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년 뒤의 전망은 더 어두울 수도 있다. 재정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이 충격적일 만큼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재정 여건은 현재도 열악하다. 실제로 내년 재정 지출은 8.1% 늘어나는 반면에 수입은 3.5% 증가에 불과하다. 나갈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2조원 정도, GDP 대비 4.2% 적자다. 내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 정도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준칙(3%)은 이미 무너졌다. 자칫 미래세대엔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다. 조세기반을 더 탄탄하게 확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전 윤석열 정부처럼 대규모 ‘부자 감세’를 통해 민간 주도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시대착오적 인식은 정말 금물이다. 경기 활성화는커녕 세수 기반만 축냈으며 그만큼 국민의 삶만 더 힘들게 만들었다.

이재명 정부가 법인세 인상을 비롯해 일부 증세 방향으로 국정기조를 잡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때의 감세정책을 단순 원상회복하는 수준에 가깝다. 이 정도의 대책으로는 턱도 없다. 상속세와 주식 양도세를 비롯해 부동산 관련 세제 등을 더 크게 손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국민에게 솔직하게 현재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국민 다수는 쓸 돈이 별로 없다. 영세 자영업자 등은 손님이 없다. 그 새 물가는 올라도 너무 올랐다. 식탁 물가는 이미 비명 중이다. 카드 연체율이 10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지금의 상황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특히 미래세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의무지출은 이대로 지속하기 어렵다. 언제까지 쉬쉬하거나 무책임한 낙관은 정말 금물이다. 지금은 최악에 대비한다는 각오로 국가 재정의 구조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권 초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변화와 혁신의 시간인 지금이 딱 좋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문재인 정부 시즌2’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가볍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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