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시사평론가

이재명 정부 지난 100일의 최대 성과는 ‘헌정질서의 정상화’가 아닐까 싶다. 평화로운 어느 야밤에 무장한 군인들이 갑자기 국회에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번에도 국민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총부리를 겨눈 군인들을 시민들이 맨몸으로 막아섰다. 창문을 깨고 진입한 군인들은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 등으로 막았다. 국회 담장을 넘어온 다수의 국회의원도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했다. ‘광기의 권력’이 주도한 뜬금없는 친위 쿠데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훼손된 헌정질서도 어렵지 않게 정상화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쿠데타 세력의 막판 저항은 집요했다. 물론 아직도 진행형이다.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석방될 때는 ‘제2의 쿠데타’가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끝내 헌정질서를 정상화시켰다. 이제는 쿠데타 세력에 대한 ‘단죄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껏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헌정질서의 정상화라는 대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이 명한 ‘법적 절차’를 아예 무시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비루한 행태지만, 특검마저 ‘옥중 저항’엔 속수무책이다. 명색이 내란죄 혐의이고, 명색이 특검이 수사하고 있는데도 저렇게 버틸 수 있다는 사실에 국민은 많이 낯설다. 그리고 법이 무력한 것인지 아니면 법 집행의 의지가 없는 것인지 국민은 헷갈린다. 소모적인 공방전만 벌써 몇 개월째다. 당장 허리춤이라도 쥐어 잡고 끌어내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는 다수 국민의 결기는 서서히 한계마저 드러낸다. 특검법이 통과될 때만 해도 이러진 않았다. 명색이 내란죄이기에 정의가 봇물처럼 터질 줄 알았다. 그러나 법적 절차를 놓고 벌이는 소모적 실랑이는 정말 지루하다 못해 피곤하다. 정성호 법무장관이 타깃이 아니다. 이재명 정권인들 별 수 있겠느냐는 탄식의 소리가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거취 문제가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다. 애초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부터 상식 밖이었다. 사법부의 정치 개입은 물론 국민주권의 원칙을 앞장서 훼손시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고등법원이 중심을 잡아서 무난하게 대선을 치를 수 있었지만, 대법원장으로서 그때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았다. 그것이 사법부의 중립성, 재판의 독립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그럼에도 지금껏 버티면서 이제는 ‘사법 개혁’ 목소리가 나오자 ‘재판 독립’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다. 염치도 없다. 사법부는 개혁의 성역이란 말인가. 마치 사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모습이다. 어쩌다가 대법원마저 이런 행태를 보이는지 국민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다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큰 탓일까. 끌어내리려는 더불어민주당의 압박이 너무 거칠다. 압박에 경고까지 나와도 꿈쩍 않자 급기야 ‘음모론’까지 나왔다. 이른바 ‘한덕수-조희대 회동설’이다. 지난 4월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법적 처리를 놓고 두 사람이 만났다는 얘기다. 물론 사실이라면 경천동지할 일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법원장과 만나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를 재판으로 끌어내리려는 계획을 주고받았다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민주당은 이런 의혹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기했다. 동시에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도 요구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면책특권 뒤에 숨으려는 것인지 말들이 많았다. 예상대로 사건이 커지자 당사자들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억울하면 특검에서 수사받으면 될 일이라며 더 강하게 압박했다. 정청래 대표까지 나서서 관련 의혹을 기정사실로 봤다. 외려 일만 더 커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핵심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사실이라면 국기문란에 해당될 중대한 사안임에도 민주당은 꼬리를 내렸다. 익명의 녹취록 얘기도 나왔지만 믿을 수 없다. 심지어 ‘AI 조작설’까지 나왔다. 물론 아직 끝난 게 아니기에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하면 특정 유튜브에서 제기된 의혹을 민주당이 사실 확인도 없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흘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억울하면 특검 조사를 받으면 된다고 윽박지른 셈이다. 현직 대법원장이 특검 조사를 받는 일이 어디 간단한 사안인가. 그 어떤 증거도 없이 어떻게 특검이 조사할 수 있으며, 또 특검이 무리하게 조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민주당이 공당이라면 역지사지로 봐야 한다. 그러려고 특검법을 통과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 뒤엔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달 말에는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잠시 헌정질서의 혼란이 있었음에도 조속한 정상화는 이제 세계에 내놓을 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큰 성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속내는 사실 편치가 않다. 내란죄 단죄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검도 세 곳이나 발동했지만 갈수록 불안하다. 실력보다 목소리가 큰 민주당은 앞장서 말썽이다. 그리고 마냥 반대만 하는 국민의힘은 고쳐 쓰기도 어려울 듯싶다. 이래서야 국민인들 마음 편할 수가 있겠는가. 정치권은 입만 열면 진실 공방에다가 극한의 적대 발언까지 난무하고 있다. 어목혼주(魚目混珠)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국민은 점점 피곤하며 또 지쳐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대로 갈 수 있을지가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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