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이고, 따라서 권력 서열에서 가장 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정치권과 헌법학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된 권력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곧 국가 권력 기관 간의 서열을 형성하고, 대통령이 다른 헌정 기관들보다 ‘위에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면, 이는 헌법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거나 왜곡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헌법은 권력 간의 상하 관계를 전제하지 않는다. 대통령, 국회, 법원은 각각의 기능에 따라 권한을 부여받고, 상호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구조 속에 존재한다. 그 누구도 ‘서열상 가장 높은’ 기관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다는 사실은 ‘선출 방식의 특수성’일 뿐, 다른 국가기관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처럼 큰 권한을 갖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견제와 균형이 요구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권한의 설명을 넘어서, 권력 정당성에 대한 일종의 본질적 관점을 드러낸다. 즉,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됐다는 사실이 모든 권한의 우월성을 확보해 준다는 논리, 이러한 주장 구조는 정치철학의 역사에서 낯설지 않다. 

바로 1930년대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가 대표적으로 주장했던 ‘결단론’과 매우 유사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 슈미트는 “주권자는 예외 상태에 대해 결정하는 자”라는 유명한 문장을 통해, 국가의 질서와 법이 위기에 처했을 때 최종적으로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권한, 즉 ‘결단의 권력’을 가진 자가 주권자라고 해석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복잡한 절차와 합의 과정보다, 하나의 의지가 국가 전체를 대표해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다 효과적인 정치적 방식으로 보았다. 이때 결정 권력은 법 위에 존재하게 되고, 국가를 통치하는 주된 힘이 된다. 

슈미트는 ‘누가 국민의 의지를 진정으로 대표하느냐’는 문제에 있어, 직접 선출된 권력, 특히 지도자의 결단을 최우선의 가치로 뒀다.

이 대통령의 권력서열론은 이와 구조적으로 흡사하다. 그는 국민이 직접 뽑았기 때문에 그 정당성이 다른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직접 선출’이라는 정당성의 논리는 1930년대 독일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오용된 바 있다. 

슈미트는 히틀러의 통치를 옹호하며,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는 모든 권력의 정점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히틀러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의회에 군림하며 법 위에 선 결정권자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법치와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는 붕괴됐고, 독재 체제가 법적으로 정당화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은 1930년대 독일과는 전혀 다른 헌정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 대통령이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적 통치로 나아가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으며, 그럴 것이라 믿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인식의 구조 자체가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정권을 가능하게 했던 논리와 닮아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당성의 출처가 ‘선출 여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과 절차, 그리고 그 권력이 어떻게 견제받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대한민국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모두 여당에 의해 장악된 상태다. 여당은 국회의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당의 실질적 중심으로서 입법의 방향까지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 환경에서는 사법부와 언론의 독립성이 민주주의의 균형을 유지하는 마지막 보루다. 그런데 권력 서열이라는 논리가 대통령을 그 구조의 ‘최정점’에 위치시키려 한다면, 이는 곧 사법부와 언론도 대통령 권위에 종속돼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낳을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삼권분립 원리를 뿌리부터 흔드는 일이자, 전체주의적 권력 집중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권력의 절차적 정당성만으로는 민주주의적 리더십을 확보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권력을 행사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절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적 권한이 아니라 지배적 폭력일 뿐이다. 

오늘날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최고 권력자임을 주장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그 자신이 말한 바대로 국민의 권한을 ‘잠시 위임받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권력을 헌법적 원칙 안에서 행사하는 태도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헌법을 가르치듯이 말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헌법이 부여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때다. 국민은 대통령으로부터 헌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헌법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국민이 보고 판단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권력의 정당성 논쟁이 아니라, 정당한 권력을 절제하며 운영하는 민주적 감각이다. 권력서열을 주장하는 대신,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더 낮은 자리에서 성실히 구현하는 행정의 리더로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법을 아는 이가 법 너머의 권력을 주장하기 시작할 때, 그 사회는 민주주의의 긴장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그런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권력자 스스로 절제의 미덕을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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