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비상계엄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검팀은 한 전 총리에 대해 내란 방조와 위증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법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중요한 사실관계 및 피의자의 일련의 행적에 대한 법적 평가와 관련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여러 국무위원들은 내란 방조 혐의로 수사하려던 특검 방침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초부터 한 전 총리에게 계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를 단지 형식적 합법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계엄 선포문을 사후 작성·폐기한 행위 역시 불법을 보완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한다.

반면 한 전 총리 측은 대통령의 강경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으며, 국무회의 소집도 계엄을 만류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였다고 항변한다. 사후 문건은 합법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한 폐기였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결국 이러한 상반된 주장 속에서 ‘방조’라는 범죄 구성 요건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단순한 소극적 태도나 절차적 참여를 넘어, 범죄 실행을 실질적으로 지지하거나 원조하려는 의사가 입증돼야 한다.

이번 결정은 그 입증이 현 단계에서는 부족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향후 특검이 다른 국무위원들에게 유사한 혐의를 적용하는 데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기각을 면죄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무총리가 국가 최고위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책무를 다했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법적 책임은 불분명할 수 있으나, 정치적·윤리적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비상계엄과 같은 중대 사안에서 총리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사법부는 범죄 구성 요건 충족 여부에 따라 구속 여부를 판단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기각은 동시에 우리 헌정 질서가 직면한 허약함을 드러내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특검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수사의 방향을 재점검해야 한다. 단순히 구속 여부를 넘어, 국민 앞에 명확한 진실을 제시하는 것이 본연의 책무다. 특검은 정치 굴레에 갇혀 구속 수사에만 의존하기보다, 객관적 사실을 면밀히 밝혀내고 제도적 교훈을 도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 전 총리의 구속영장 기각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의 경계는 분명 다르다. 국무총리라는 자리가 권력의 들러리가 아니라 진정한 견제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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